[문화의 재발견 91 - 우리 조상이 세운 나라(?) ‘멕시코(México / Méjico)’]
[문화의 재발견 91 - 우리 조상이 세운 나라(?) ‘멕시코(México / Méjico)’]
  • 김권제 기자
  • 승인 2019.07.03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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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México / Méjico) 또는 멕시코 합중국은 북미의 끝자락(중미) 나라로 수도는 멕시코시티이며 2016년 인구는 약 128,632,000명으로 세계 10위이다. 북쪽은 미국, 남쪽은 벨리즈, 과테말라와 국경을 접하고 서쪽은 태평양, 동쪽은 카리브해를 접한다. 바하칼리포르니아 반도는 멕시코 서쪽의 반도로 캘리포니아 만을 형성한다. 동쪽에는 멕시코 만과 또 다른 반도인 유카탄 반도로 만들어지는 캄페체 만이 있다. 멕시코 중부는 광대하고 높은 고원 지대이다. 북미 남부의 삼각형 모양 멕시코는 세로로 북~남이 3,000km 이상 뻗어 있다. 가로 폭은 북쪽은 2,000 km가 넘는 곳이 있고 남쪽 테우안테펙 지협은 220 km 이하이다. 멕시코의 큰 강은 북쪽 국경의 리오 그란데 강과 남쪽 국경의 우수마신타 강 등이 있다.

기후는 북쪽 거친 사막에서 열대 우림인 남쪽까지 변화가 크다. 해안 저지는 열대 내지 아열대이다. 북서쪽 연안의 저지는 반 사막의 건조지대이다. 중앙부 멕시코 고원은 4계절 내내 온대 기온이다. 강우량은 적으나 남부에서는 약 600㎜, 북부에서는 약 200㎜이다. 멕시코 기후 특징은 고도 차에 따라 기후와 식생이 현저하게 변한다. 열대 저지, 온대 고원, 냉대 침엽수림, 알프스형 초지, 만년설 고산대가 고도차에 따라 관찰된다.

역사를 보면, 기원전 2만 년경 인간이 거주한 흔적이 있으며, 선고전기 중기인 기원전 1300년경 멕시코 만을 중심으로 올멕 문명이 발흥했다. 이 문명은 그들 지배자의 모습을 새긴 것으로 거대한 석상 두상으로 알려졌다. 선고전 시대 말기 멕시코 중앙 고원 텍스코코 호수 남쪽에 원형의 대형 피라미드인 쿠이쿠일코 동쪽으로 테오티우아칸이라는 거대 도시가 세워졌다. 그 후에도 후기 마야 문명과 아즈텍 문명 등 수준 높은 원주민 문명의 거점으로 ​​번영하였다.

14세기 후반, 텍스코코 서쪽의 테파넥족 국가의 아스카포찰코에 지도자 테조조목이 등장했다. 그가 이끌던 용병부대는 그의 사후, 15세기 초반에 텍스코코, 틀라코판과 함께 아즈텍 삼국 동맹을 맺었고, 텍스코코의 유명한 군주인 네살왈코요틀의 사후에 비로소 완전한 지도력을 갖추고 주변국을 정복해 아즈텍 호수 위에 수도 테노치티틀란을 중심으로 아즈텍 제국을 형성했다. 1519년에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가 멕시코에 상륙했다. 그는 아즈텍의 내분과 전승 신화를 이용해 전투를 벌여 테노치티틀란을 정복하고, 1521년 황제 쿠아우테목을 처형하고 아즈텍 제국을 멸망시켰다. 그 후 스페인은 이 땅에 누에바 에스파냐(신 스페인) 부왕령을 만들었다. 페루 부왕령과 함께 인디아스 식민지의 중심으로 멸망된 테노치티틀란의 위에 멕시코 시티가 건설되었다. 이후 약 300년간 스페인 식민지 시대 동안 스페인어와 카톨릭교가 보급되고, 인디오와 스페인인 사이에 혼혈이 진행됐으며, 스페인 기원의 봉건적 대토지 소유 제도가 생겨났다. 18세기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 전쟁 등으로 토착 크리올들 사이에 독립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1808년 스페인 본토 민중 봉기를 계기로 스페인 독립전쟁이 시작되면서 인디아스 식민지도 스페인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였다. 1809~1810년까지 키토, 라파스, 산티아고, 카라카스, 보고타,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인디아스 각지에서 크리올료들의 봉기가 시작되었다. 멕시코도 1810년 9월 15일 미겔 이달고 신부 등의 주도로 오랜 멕시코 독립전쟁이 시작되었다. 멕시코 크리올료는 페루 크리올료처럼 원주민들의 민중 반란을 두려워해서 독립 운동에 소극적이었고, 이달고와 반란을 이어받은 메스티죠의 호세 마리아 모렐로스 신부도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의 왕당파 군에게 패했다. 이후 1820년경 남부에서 시몬 볼리바르와 호세 데 산 마르틴 등의 해방군이 각지를 해방시켰고, 인디아스에 남는 식민지는 도서 지역과 브라질을 제외하면 페루, 중미, 멕시코 만 밖에 없었다. 1821년 9월 15일 보수파 크리올료를 대표하는 독립 지도자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가 멕시코시티에 입성하였고, 반 자유주의의 입장에서 독립을 선언했다. 그는 황제에 즉위로 제1차 멕시코 제국이 건국되며 중앙아메리카를 병합했다. 독립 이후 혼란으로 1823년 황제가 퇴위하고 제국이 붕괴되며 멕시코 연방 공화국(19세기)이 되었고, 이때 중미 연방 공화국이 독립했다. 독립 후 내전으로 농업 생산력 저하, 광산의 생산력 저하, 카우디요 등의 군웅할거로 여러 문제가 발생했고, 정치적 불안정한 시대가 이어졌다. 1835년 10월 23일~1846년 8월 22일까지는 중앙 집권 국가인 멕시코 공화국이 있었다. 1835년 앵글로 색슨 계 이주민이 반란을 일으켜 1836년에 멕시코령 테하스는 텍사스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미국이 1845년 텍사스를 합병하자 1846년 전쟁이 발발했지만 멕시코 시티를 점령당하고, 1848년 패배하면서 텍사스를 매각하고 뉴멕시코 주, 캘리포니아 주 등의 땅을 미국에 팔며 멕시코는 리오 브라보 강 이북의 영토를 상실했다. 1861년 미국의 남북 전쟁 발발과 함께 프랑스 제2제국의 나폴레옹 3세가 멕시코를 공격했다. 1863년 멕시코 시티를 함락하고 괴뢰 정권인 멕시코 제2제국이 건국 되었다. 인디오 출신 베니토 후아레스 대통령은 미국의 지원으로 프랑스군에 맞서 1866년 주권을 회복했지만 미국 영향력은 높아졌다. 1876년 프랑스 침략 때 전쟁 영웅 포르피리오 디아스가 후아레스 뒤를 이은 테하다 대통령을 쿠데타로 몰아내고 대통령에 취임했다. 디아스는 30년 이상 독재를 했으며, 외자를 도입하고 경제를 확장시켰지만, 비민주적인 정권 운영으로 각지에 소요가 발생했다. 1907년 공항의 영향으로 노동쟁의가 발발하고, 1910년 대통령 선거가 치뤄졌다. 디아스가 상대 후보 프란시스코 마데로를 체포 감금하면서 ‘멕시코 혁명’이 시작되었다. 판초 비야, 에밀리아노 사파타, 베누스티아노 카란, 알바로 오브레곤 등의 혁명군은 노선의 차이에도 정부군을 물리치고 1917년에 혁명 헌법을 반포하며 혁명이 끝났다. 1929년 국내의 다양한 혁명 세력을 하나로 묶어 국민혁명당이 결성되어 71년간 사실상 일당 독재 체제가 수립되었다. 1934년에 성립된 라자로 카르데나스 정부는 유전 국유화와 토지 개혁을 실시해 국내의 경제 구조는 안정되었다. 이후 당명을 제도혁명당(PRI)으로 바꾸었다. PRI는 일당 독재를 추진하고 미국과 서방의 자본으로 경제를 확대했지만, 외교면에서 쿠바 등 라틴 아메리카의 좌파 정권과 밀월하며, 정책이 모순된 체제면서도 20세기 말까지 여당으로서 정치를 지배했다. 20세기 초~중반까지는 석유와 은의 수출이 큰 부를 가져왔지만, 근대산업화 과정에서 막대한 대외 부채를 안게 되었다. 20세기 중반에 산업화에 성공했지만 만성적인 인플레이션과 일부 부유층에 집중된 부의 불균형, 그리고 자원 가격 폭락에 따른 경제 위기 등 현대에 이르기까지 국민을 괴롭히는 결과가 되었다. 1994년에 발효된 NAFTA는 미국, 캐나다와 무역 확대, 빈부격차 확대, 전통적 공동체의 인디오의 공유지를 해체 및 농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었기에 같은 해 1월 1일 마르코스 부사령관 등이 이끄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이 과테말라 국경 지대의 가난한 주 치아파스 주에서 봉기했다. 사파티스타는 치아파스 주를 해방구로 선포하고 반세계화 운동의 최대 존재로서 내외의 지원을 받아 현재도 정부군과 계속 대치하고 있다. 그 후 2000년에 PRI는 만연한 부패와 침체된 경제 실책, 사파티스타 봉기 등으로 총선에서 패하면서 71년 독재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현재도 큰 영향력을 유지한다. 2005년 이후 마약 카르텔의 항쟁으로 치안이 악화됐다. 전 정권인 칼데론 정부는 마약 카르텔과 유착한 경찰과 주지사를 체포하며 강경하게 군을 이끌며 마약 범죄 조직을 단속했다. 이에 카르텔의 폭력에 의한 사망자가 급증했고, 2010년 이후 매년 1만 5천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 원유가의 상승이나 NAFTA 체결 후 수출 물량 증가, 내수 확대에 의해 중산층이 증가하며 멕시코는 넥스트 일레븐 국가가 됐다. 2010년 7월 4일, 전국 32개 주 중 14개 주에서 지방 선거를 실시했는데 2000년까지 집권당이었던 야당 제도혁명당(PRI)이 압승(10개 주 지사 당선)을 했다. 2012년 7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 제도혁명당(PRI)의 엔리케 페냐 니에토가 선출되어 대통령에 취임했다.

멕시코는 연방 국가로 대의제의 민주주의 공화국이며 1917년 헌법에 따라 대통령제를 채택했다. 헌법은 세 단계 정부를 규정하는데, 연방 정부, 주 정부, 지방 정부다. 모든 단계의 공무원은 단순 다수제나 비례 대표제 선거 혹은 다른 선출직 공무원의 권한으로 임명된다. 입법부는 양원제이며, 연방 법 제정, 전쟁 선포, 세금 부과, 국가 예산 승인, 국제 조약, 외교 합의 비준 등의 권한이 있다. 행정부는 대통령이 정부 수반이며 군의 통수권자이다. 또 내각의 각료와 여러 공무원을 상원의 승인을 받아 임명한다. 대통령은 법을 집행하며, 법안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사법부의 대법원에는 11명의 판관이 있으며 대통령이 상원의 승인을 받아 임명한다. 이들은 법을 해석하고 연방 차원의 소송을 심리한다. 의회 의원직은 다수 득표제와 연방 차원의 비례대표제가 적용된다. 하원 300명은 다수득표제로, 200명은 전국 5개 선거구에서 정당 명부식 비례 대표제로 선출된다. 상원은 모두 128명인데, 연방 구역과 각 주에서 2명씩 다수득표제로 64명, 1명씩 차등 득표자로 32명, 그리고 전국 단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32명을 선출한다. 멕시코 의회에는 8개 정당이 있으나 국민행동당, 제도혁명당, 민주혁명당만이 지배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멕시코는 미국과 인접해서 도로망의 근대화는 라틴아메리카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 수도 주변에는 고속도로가 개통되었고, 항공도 발달해 있다.

멕시코의 인종 구성은 백인과 원주민의 혼혈인 메스티죠가 약 62%, 원주민 혹은 아메리디언 28.0%, 백인 9%, 기타 1%이다. 흑인은 초기 식민지 시대에 대농장의 노예로 이입된 자들의 후손이다. 그러나 대체로 메스티소의 증가와 인디오의 감소라는 경향이 보인다.

스페인어가 공용어이지만, 원주민 중 100만을 넘는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모어를 일상어로 사용하고 있다. 멕시코에서 사용하는 스페인어는 본토 스페인어와 다른 어휘와 어법을 사용하는 맥시코 스페인어라는 별도의 방언을 사용한다. 미국과 관계가 개선됨에 따라 영어도 사용되며, 프랑스어, 러시아어, 이탈리아어도 외국어로서 조금 쓰인다. 중국어, 아랍어, 이디시어는 이주민들 사이에서 쓰이고, 원주민들은 마야어, 나우아틀어 등 여러 가지 언어와 방언을 쓴다.

스페인의 영향으로 대부분 토착화된 로마 카톨릭 교회를 믿는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1911년 멕시코 혁명 전까지 기득권층의 일부를 형성했으나 혁명정부의 사회개혁으로 기득권을 잃게 되었다. 혁명정부는 로마 카톨릭 교회 성직자가 투표 참여를 금지하여 교회의 정치적 간섭을 금했다. 20세기초 성공회와 개신교가 들어왔는데 이들은 문맹퇴치사업으로 멕시코 정부의 원주민 동화정책에 기여했다. 원주민 고유의 토착 종교도 소수 존재한다.

멕시코의 학교 교육은 스페인어와 영어가 필수이고 외국어로는 독일어, 프랑스어 등이 있다. 이 나라의 UNAM이라는 대학은 등록금이 원화로 500원에 이를 정도로 싸다.

멕시코는 신흥공업국으로 분류된 국가로 풍부한 노동 인력과 석유 등의 지하자원, 미국과의 근접성을 바탕으로 60~70년대 상당한 경제 발전을 이룩했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빈곤하다. 2010년 기준 지니 계수가 47.2 가량으로 불평등한 소득 구조를 보이는 편이다. 또한 페멕스가 정부 수입의 37% 가량에 달하는 등 소수 기업들의 경제 편중도가 높다. 미국과 NAFTA를 체결하였으며 OECD, G20 국가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멕시코를 넥스트 11로 꼽기도 한다. 전통의상은 '우이필'과 '레보소'가 있다. 우이필은 위필 또는 웨필리라 불리는데, 멕시코의 농사일을 하는 여자들의 민족 의상으로 소매없는 블라우스 모양의 관두의 또는 중남미 특히 과테말라의 토착원주민 여성들이 이용하는 판초식 의복이다. 레보소는 머리를 두르거나 옷감의 재료로 많이 사용한다. 모자는 솜브레로가 있다. 옥수수가 주식인 멕시코는 말린 옥수수 가루를 반죽해 만든 토르티야에 다진 고기 등 각종 음식을 넣어 먹는 타코가 대표 음식으로 멕시코식 샌드위치다. 타코는 손바닥 크기만큼 동그랗게 부쳐낸 토르티야에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각종 육류 및 고추, 피망, 선인장 열매 등 다양한 야채들을 각기 볶아낸 소를 쌈처럼 싸먹는 전형적이고 대중적인 멕시코 요리라 어느 지역에서나 볼 수 있다. 다른 전형적 멕시코 음식으로 포솔레(pozole)가 있다. 돼지 머리고기와 커다란 옥수수 덩어리들이 하얀 국물에 담겨 나오는데, 레몬즙과 순무, 양파와 향초, 고추 그리고 마지막으로 뻘건 고추양념을 넣고 저어서 먹는다. 주요 음료는 오르차타이로 쌀 음료다. 술은 메스깔 등이 있는데 그 중 잘 알려진 데킬라가 있다.

우리 조상이 세운 나라(?) ‘멕시코(Mēxihco, Mexico)’는 어디에서 유래가 되었을까?

한반도 조상 중에 맥족이 있다. 이들이 쿠릴 열도를 넘어가서 나라를 세웠는데 그 나라가 멕시코이고, 그 의미가 ‘맥족의 집’이라 주장하는 설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Mēxihco’는 나우아틀어로 아즈텍 제국의 중심지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멕시코 계곡과 그곳의 사람, 멕시카와 주변 영토를 의미한다. 1524년 고대 멕시카 위에 수도 멕시코시티가 세워졌다. ‘Mexico’는 고전 나후아틀어 ‘Mēxihco(멕시카)’에서 유래되었다. 이 단어가 스페인어 ‘Mēxico(멕시코 시)’로 된 다음 영어 ‘Mexico’로 정착했다. 멕시코 시의 이름은 아즈텍 문명 때 이름으로 ‘멕시틀리(Mextli or Mēxihtli) 신의 땅’이라는 뜻이다. 전쟁의 신이자 멕시카의 수호자 멕시틀리의 이름은 ‘metztli(달)’와 ‘xictli(배꼽)’에서 온 말로 ‘달의 자식/ 달의 중심지’라는 뜻이다. 멕시코의 발음 (mexiko)는 ‘메히꼬’에 가깝지만 우리나라는 영어식 발음 ‘멕시코’로 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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