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재발견 90 - 불타는 정열의 나라 ‘브라질(Brasil, Brazil)’]
[문화의 재발견 90 - 불타는 정열의 나라 ‘브라질(Brasil, Brazil)’]
  • 김권제 기자
  • 승인 2019.07.0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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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연방공화국, 약칭 브라질은 아메리카 대륙의 유일한 포르투갈어(본토어에 없는 독특한 어법이나 악센트로 브라질 포르투갈어라 함) 사용 국가다. 첫 수도는 살바도르 (Salvador), 두 번째는 리우데자네이루였으나, 해안 인구 분산을 위해 1960년부터 건설된 브라질리아(Brasilia)가 현재 수도다. 삼바와 카니발의 본고장이며 축구 강국이다. 에콰도르와 칠레를 제외한 남미 모든 나라인 프랑스령 기아나, 수리남, 가이아나,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페루, 볼리비아,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및 우루과이와 국경을 접한다. 브라질은 남미 최대 국가로 대륙의 48%를 차지하며 세계 5번째,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3번째로 크다. 북부는 아마존 강의 세계 최대 열대 우림지대이고 남부는 브라질 고원이 펼쳐져 있다. 최고봉은 베네수엘라 국경 근처 북부 기아나 고지의 해발 3,014m피고다 네블리나 산이다. 남서부 파라과이, 아르헨티나와 국경 부근에 이구아수 폭포가 있고, 라플라타 강 수계의 큰 강 파라나 강이 흐른다. 그 외 네그로 강, 상프란시스쿠 강, 싱구 강, 마데이라 강 등이 있다.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국경 부근은 세계 최대의 열대 습지인 판타나우 자연 보전 지역이 있다.

국토의 93%가 열대 지역으로 북부의 열대 기후와 남회귀선이 지나는 상파울루 이남의 온대 기후로 나뉜다. 열대 기후도 지역에 따라 적도 기후, 열대, 스텝, 고지대성 열대, 아열대 기후로 나뉜다. 열대지역은 연중 26도 이상이나 온대 지방인 산타카타리아 주 등은 겨울철(6~8월) 눈이 내린다. 여름철인 9~4월에 내리는 강우량은 대부분 지역이 연중 1,000~1,500mm이며 아마존 지역은 연중 2,000mm이상, 벨렘 지역은 3,000mm까지 된다.

역사를 보면, 브라질 최초 주민은 B.C 11,000년 베링해를 건너온 아시아인으로, 기원전 8000년경 현재 브라질에 도달했다. 이들은 잉카와 별도로 원시적 농경을 영위했다. 이후 인디오인 투피-과라니계 원주민들이 살았는데 16세기 전반 해안 지역에만 약 100~200만명이 살았다 추정된다. 원주민은 투피어계, 알아크어계, 카리브어계 집단이 있었다. 1500년 포르투갈의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이 브라질을 발견했다. 1580년 포르투갈이 스페인-합스부르크 왕조와 연합하자 브라질은 네덜란드 서인도회사의 공격으로 북동부 일부가 점령되었고, 네덜란드는 1661년 철수했다. 파우브라질 나무가 고갈된 후 북동부 마데이라 제도에 사탕수수가 도입되어 농장의 노동력으로 인디오가 노예화되고 아프리카 흑인 노예가 유입되었다. 내륙 탐험은 상파울루 반데이란테(노예사냥 탐험대)가 17세기 시작했다. 이들은 남부와 파라과이까지 원정해 과라니 사람을 노예로 잡아갔다. 노예 중 브라질로 도망쳐 주거지를 형성했는데 ‘모캄보’나 ‘킬롬보’라 불렸고 아프리카 흑인에 원주민들도 있었다. 킬롬보 중 가장 큰 팔마레스는 ‘강가 즘바’에 이어 ‘즘비’가 통치했다. 1695년 사오 파울로 출신 도밍고스 조르제 벨호가 즘비를 죽이고 이곳을 정복했다. 1680년 부에노스아이레스 건너편에 콜로니아 데 세크라멘토를 건설해, 반다 오리엔탈 지역은 독립 후까지 브라질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화약고였다. 18세기 미나스 제라이스의 금광 발견으로 골드러시가 일어나 브라질 중심이 북동부에서 남서부로 이동해 1763년 리우데자네이로가 수도가 되었다. 금광으로 18세기 30만 포르투갈인이 이민 왔고 더 많은 흑인 노예가 유입되었다. 아이티 혁명으로 크리올 백인이나 물라토, 크레올 흑인의 독립 운동이 있었지만 대중적 혁명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1807년 프랑스가 포르투갈을 침공하자 포르투갈 왕가는 리우데자네이루로 천도하며 리우 개발이 진행되었다. 1815년 리우데자네이로는 브라질과 포르투갈 및 알가르베 연합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포르투갈 정부는 반다 오리엔탈의 연방 동맹과 전투를 통해 이 지역을 지배했으며, 정복한 지역에 시스플라티나 주를 설립했다. 1821년 포르투갈 왕궁은 리스본으로 귀환했지만, 잔류한 브라간사 왕가 황태자 페드루는 1822년 9월 7일 황제 페드루 1세(재위 1823-1831)로 즉위해 브라질 제국의 독립을 선언했다. 1820년대 북동부 페르남부쿠 주 적도 연맹의 반란이 있었고, 최남단 시스플라티나 주를 둘러싸고 전쟁이 발발했다. 시스플라티나 주는 영국 중재로 1828년 우루과이 오리엔탈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1831년 페드루 1세가 퇴위하며 혼란이 가중됐고, 히우그란지두술 주에서 목장 주와 가우초가 반란을 일으켜 파라포스 전쟁이 발발했다. 1840년 페드루 2세가 즉위했고 1848년 프라이에이라 반란 진압한 후, 브라질 사상 최초의 안정기가 찾아왔다. 1864년 파라과이의 선전포고로 전쟁이 일어났지만, 브라질 제국 주체의 삼국동맹군은 파라과이를 격파했다. 독립 후에도 대농장 노예제도가 유지되며 서반구의 유일한 노예제도 국가로 남았다. 1888년 ’황금법’으로 노예제도가 폐지됐지만, 페드루 2세는 대농장의 지원도 잃고 1889년 데오도로 다 폰세카 장군의 쿠데타로 붕괴되며 공화제로 전환되었다. 제정 시대부터 커피 농장 노동자로 유럽 이민을 받았지만, 1908년 유럽과 아시아의 일본인 이민자들이 유입되었다. 1920년대 카페 콩 레이치 체제에 대한 비판이 높아져 1930년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히우그란지두술 주의 제툴리우 바르가스가 1930년 혁명을 일으켰다. 1932년 상파울루 주의 반 바르가스 세력의 호헌 혁명이 진압되며 그는 브라질 전역의 지배권을 확립했다. 1937년 그는 이탈리아 파시즘의 신 국가 체제를 확립하고, 대학​의 정비, 국가 주도 공업화, 이민자 동화 정책, 중앙 집권 체제 확립을 진행했다. 바르가스 독재에 대한 불만으로 종전 후 1945년 10월 13일 군사 쿠데타로 실각했다. 1946년 신 헌법 제정 후 1950년 브라질 최초 민주 선거를 통해 제툴리우 바르가스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파시즘보다 좌파 포풀리즘으로 브라질 경제의 국민화가 진행되었지만, 군의 저항으로 1954년 자살했다. 1956년 취임한 쥬세리노 쿠비세키 대통령은 “50년 발전을 5년에”라는 개발 정책을 추진해 고이아스 주에 수도 브라질리아를 건설 후 1960년 천도했다. 1961년 취임한 존 베우키오루 마르케스 골라르트 대통령은 증가한 인플레이션을 극복하지 못하고 1964년 미국 지원의 카스텔루 브랑쿠 장군의 쿠데타로 실각했다. 브랑쿠는 군사 독재를 확립, 친미반공 정책과 외자 도입으로 공업화를 추진하며 고도 경제성장을 했지만, 1973년 오일쇼크 이후 성장은 추락하고, 소득 격차 증가로 범죄 발생이 늘었다. 그 동안 각지에서 카를로스 마리게라의 민족해방행동과 10월 8일 혁명운동 등 도시 게릴라의 무장 투쟁으로 외국대사 납치 등 수 차례 납치 사건이 발생했다. 1974년 대통령에 취임한 에르네스투 게이세우 장군은 국민적 불만 팽배로 군정의 노선을 전환했고, 1979년에 대통령에 취임한 주앙 피게이레두는 민정 이관을 공약했다. 1985년 탄크레두 네베스 승리로 문민 정권이 부활했지만 급사하며 부통령 조제 사르네이가 승계했다. 인플레이션 확대로 경제는 악화됐지만 아르헨티나와 관계가 개선되며 적대 관계에 종지부를 찍었다. 1995년 브라질 사회민주당의 페르난두 엥히키 카르도주 정권 하에서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 파라과이는 같은 해 메르코수르(남미 공동 시장)를 발족했다. 2003년 노동자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 취임 후 세계 경제의 호조를 바탕으로 경제를 회복하였다.

브라질은 대통령제 연방공화국으로 부통령이 존재한다.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는 대통령과 부통령의 임기는 4년이며, 재선이 인정되나 3선은 금지한다.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이 가능하다. 의회는 상원, 하원의 양원제이다. 노동자당 외에 민주운동당과 사회국민당 등이 있다.

공중 위생, 교육 등 공공서비스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낮고, 해안과 대륙 내부의 경제격차가 심하지만, 경제와 재정의 호전으로 최근 급속히 개선되고 있다. 높은 세율에 부유층은 현 정권에 불만이 높지만, 의료 및 복지 교육 수준 향상, 지역 생활 기반의 정비가​​ 착실히 진행되어 대다수 시민 계층의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빈민지역에 교육이 보급되며 문맹률이 낮아졌다. 공업화와 경제 발전을 위한 외자 도입으로 1960년대 후반부터 매년 10% 이상 성장하며 브라질 붐이 일었다. 이에 유럽 선진국의 현지 생산 및 합작 기업이 급증해 자동차 생산 및 조선, 제철은 항상 세계 10위권의 국가였지만, 1950년대 후반 브라질리아 건설 부담과 1970년대 초반 오일쇼크, 외자 도입으로 대규모 자본유출 등 경제가 파탄났다. 1970년대 후반 경기 침체에 심각한 고 인플레이션으로 도산 기업이 잇따랐고 경제 악화로 선진국 부채도 증가했다. 1998년 IMF 구제 금융 등으로 세계 최고 채무국이라는 오명에 1999년 외환 위기로 국가 부도에 몰렸지만, IMF와 미국의 긴급 융자로 파탄은 막았다. 2003년 집권한 룰라는 개발 도상국에 무역을 확대했고, 채무 문제 해결에 나섰다. 천연자원 개발과 제조업 발달로 2007년 IMF 채무를 갚고 채권국이 됐다. 현재 경제규모 세계 11위며 러시아, 중국, 인도와 함께 브릭스(BRICs)라 불리는 신흥 경제국가이다. 브라질은 철강업이 산업의 30%를 차지하며 제조업 기술은 남미 최고이다. 중공업 중 항공산업이 발달해 1969년 설립된 엠브라이트는 유럽이나 일본 등 여러 나라에 수출되는 등 소형 제트기 시장의 절반 정도 점유율로 기술력을 인정 받는다. 경제활동 인구 26%가 농업에 종사한다. 고무재배 농업을 19세기까지 독점하며 마나우스는 크게 번창했지만 페루, 볼리비아, 말레이시아 등 고무 재배 확대로 아마존 고무 재배는 후퇴하였다. 목축업 번성과 집약적인 축산업으로 상파울로 등 대도시 주변의 양계업 등은 현대적 시스템으로 행해진다. 브라질 북동부는 사탕수수 재배가 활발하고 세계 1위 수출의 커피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옥수수, 콩, 사탕수수 등의 재배를 장려한다. 세계 최대 농작물 생산국으로 전체 수출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금, 은, 다이아몬드, 철광석, 크롬 등 광물이 많고 석유와 천연가스도 풍부하다. 세계 최대 밀림인 아마존에서 연간 60여만 톤의 목재를 생산한다. 수자원이 풍부해 파라과이와 공동 건설한 국경 지대 파라나 강 유역의 세계 최대 이타이푸 댐에서 많은 전력을 생산한다.

총인구는 2015년 현재 2억명 정도로 전체 인구의 85.7%가 도시에 거주한다. 다인종 국가로 백인, 혼혈인(백인과 흑인 혼혈의 갈색인), 흑인, 황인, 브라질 원주민 등으로 구분한다. 피부색으로 구별해 백인과 흑인 혼혈과 중동 출신 후손들도 피부색이 밝으면 백인으로 본다. 흑인은 식민지 시절 노예 후손이고, 혼혈인은 흑인과 백인, 기타 여러 인종의 혼혈이다. 황인은 일본, 중국과 한국계 등이다. 인디오는 원주민으로 구분한다. 2005년 통계에 백인 50%, 흑인 6%, 혼혈인 약 43%, 기타 1%로 되어 있다.

포르투갈어(브라질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영어 교육이 이루어지지만 대체적으로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 주변에 스페인어 사용 나라가 많아 스페인어 사용도 늘고 있으며, 지역적으로 이탈리아나 독일어가 사용되는 곳이 있다.

세계에서 로마 가톨릭 신자가 가장 많은 나라로 카톨릭교 64.6%, 개신교 17.3%, 기독교 6.8%, 전통 종교 2.0%, 무교 8.4%, 기타 1.0%이다. 그러나 아프리카 흑인들의 영향으로 아프리카 토착 종교가 광범위하게 융합되어 있다. 국교는 없으며,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철도와 도로가 부족해 항공업과 아마존 강과 지류가 내륙의 교통 소통에 큰 역할을 한다. 대도시 주변 도로 및 간선 도로 대부분이 포장되어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 자동차 산업의 발달로 해안 도시를 중심으로 고속도로망이 발달했다. 그러나 대기오염과 교통 체증 등 철도에 관심이 높아지며, 대도시 지하철과 통근열차의 정비가 진행되고, 상파울루~리우데자네이루의 고속철도도 계획되고 있다. 고속도로 발전과 침대, 화장실, 에어컨을 완비한 장거리 버스들이 저렴한 교통 수단으로 이용된다. 철도는 적은 데다 대부분 해안 지역을 운행하며 화물운송 점유율은 20%이다.

불타는 정열의 나라 ‘브라질(Brasil, Brazil)’은 어디에서 유래되었을까?

‘brasil’은 게르만 조어 ‘brasō(벌겋게 타는 석탄)’가 기원인 라틴어 ‘brasa(붉은 석탄)’에 접미사 ‘-il(-iculum/ -ilium에서 유래)’이 혼합되어 ‘brasil’이 되었다. 붉은 염료를 채취하는 브라질나무가 포르투갈어 ‘pau-brasil(불타는 숯처럼 붉은 나무)’로 이 단어에서 국명 ‘brasil’이 나왔다. 영어는 ‘Brazil’로 표기하지만 수도는 영어도 포르투갈어 ‘Brasília’로 표기한다. 1500년 포르투갈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이 상륙했을 때 남미 대륙이 아닌 섬이라고 생각해 ‘베라크루즈(진정한 십자가) 섬’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후 마누엘 1세 때 ‘산타크루스(Terra da Santa Cruz)의 땅’으로 개명되었다. 하지만 유럽 상인과 선원들은 동부 해안에서 브라질나무 교역 시 ‘브라질(Terra do Brazil, 브라질 나무의 땅)’을 사용했고, 16세기에 ‘브라질’이라 불렀다. 이전 선원들은 때때로 ‘앵무새의 땅(Terra di Papaga)’이라 불렀다. 과라니어와 공식 파라과이어로 브라질은 ‘Pindorama(land of the palm trees)’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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