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재발견 82 - 피오르드의 나라 ‘노르웨이(Norway)’]
[문화의 재발견 82 - 피오르드의 나라 ‘노르웨이(Norway)’]
  • 한반도경제
  • 승인 2019.06.07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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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왕국(보크몰어: Kongeriket Norge, 뉘로르스크어: Kongeriket Noreg), 약칭 노르웨이는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나라로 수도가 오슬로이다. 노르웨이는 반도 서쪽 부분, 얀마옌 섬, 스발바르 제도, 그리고 뷰베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구는 약 490만명으로 유럽에서 2번째로 인구밀도가 작다. 특히 인구 200명의 도시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며 노르웨이 인구보다 많은 노르웨이인이 미국에 산다.

해안선 길이는 25,148㎞, 면적은 386,963㎢이며 남북으로 약 1,700㎞ 길게 뻗어 있으나 동서는 가늘고, 가장 좁은 곳은 몇 km밖에 안 된다. 남부는 노르웨이 안에 펼쳐져 있는데 이곳이 가장 높고 폭도 넓다. 국토 대부분이 동쪽의 스웨덴과 2,542km의 국경을 맞대고 있고, 노르웨이 북쪽지역은 북극해와 로포텐 제도, 베스텔롤렌 제도 등이 있어 좋은 어장이다. 남쪽 스카게라크 해협의 건너편에 덴마크가 있고, 남서쪽은 노르웨이 해와 북해가 있고, 북극 해와 바렌츠 해와 접하고 있는 해안선은 피오르드로 유명하다. 국토의 72%는 빙하 침식을 받은 평탄한 꼭대기의 산지이다. 해발 2,000m 이상에는 만년설이나 빙하가 남아 있는데 곧 요텐헤임(2,452m), 요스테달스브렌(2,083m) 및 도브레페르(2,286m) 등이 높은 산이다. 서해안은 거대한 피오르드 지형이 있는데 인근에 5만 개 이상의 섬이 있고 2,500 km 이상이 이에 해당한다. 노르웨이는 대부분 상당히 높은 지대여서 자연 경관이 수려하고 선사시대 이후의 빙하 지형이 남아 있다. 베르겐 북쪽의 송네 피오르드는 안쪽까지 길이가 200㎞이며, 100㎞까지도 폭이 몇 ㎞나 된다. 이 피오르드는 양쪽 육지가 가파른 절벽이며, 수심이 깊고 경치가 좋다.

한대성 기후로 12월에는 오후 3시경 해가 지고 기온은 -15℃ 이하이다. 하지만 내륙은 겨울 기온이 떨어지고 강우량이 적다. 눈이 자주 오며 북극처럼 백야 현상이 일어난다. 난류인 멕시코 만류가 서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흘러 높은 위도에 비해 온도가 낮지 않고 강우량이 많다. 1년 강우량은 1,900㎜ 정도인데 북쪽일수록 강우량은 적어 연 강우량이 400㎜ 이하이다.

역사를 보면, 이 땅에 사람이 산 흔적은 스칸디나비아의 내륙빙하가 녹기 시작한 선사 시대이다. 1만년 전 노르웨이인들의 조상은 순록 등 동물들을 사냥하며 북쪽으로 전진했다. 인류 활동의 가장 오래된 증거가 외스트폴주 남동쪽의 언덕에서 발견되었다. 조상인 노르드인은 8세기 말까지 남부에서 여러 개 작은 나라들을 이루고 있었다. 872년 하랄왕(Harald)에 의해 최초의 통일왕국인 노르드 왕국이 세워졌고, 9~11세기까지 노르웨이 바이킹은 대대적 해상원정을 해서 아이스란드, 그린란드와 미국을 개척했다. 1013년 잠시 덴마크의 지배를 받았지만 곧 벗어나 스웨덴, 덴마크, 한자동맹 등과 경쟁했다. 1015년 울라프 2세가 노르웨이 전체를 통일하고 기독교로 개종했다. 2세기에 걸친 바이킹의 습격은 994년 왕이었던 울라프 트뤼그바손이 기독교를 승인한 이후로 점차 줄어들었다. 12세기 들어서 왕위를 둘러싼 내부항쟁이 벌어졌고, 1217년 호콘 4세가 즉위하여 내란을 평정하고 절대 왕정의 기반을 닦았다. 노르웨이의 영향력은 브리튼 제도와 아이슬란드, 그린란드까지 뻗어져 나갔다. 1217∼1263년에는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를 지배하여 노르웨이의 국력은 그 절정에 이르렀고 문화적으로도 개화를 한 시대였다. 1380년 노르웨이는 덴마크-노르웨이에 흡수되었는데 1814년까지 지속되었다. 1397년 덴마크 포메른의 에리크 3세가 노르웨이 왕으로 즉위하며 스웨덴 왕도 겸했다. 그는 1442년 폐위되었으나 이후 오래도록 덴마크 왕의 지배가 계속됐고, 1539년 크리스티안 3세는 노르웨이를 루터교로 개종시켰는데, 현재 노르웨이 기독교인들 대부분이 루터교 신자들이다. 1814년 노르웨이인들은 스웨덴에 할양되는 것에 반대했고 새로운 헌법을 채택했다. 노르웨이는 스웨덴과 전쟁을 했지만 노르웨이가 스웨덴-노르웨이연합에 들어와 스웨덴의 왕인 카를 14세를 섬기는 대신, 노르웨이의 독자적인 헌법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19세기 내내 노르웨이 독립투쟁으로 1905년 노르웨이가 독립을 쟁취하며 스웨덴-노르웨이연합이 종결되었다. 1866~1873년까지는 제1기 대규모 이민시대로 미국에 약 10만 명, 그리고 1900∼1910년 제2기 대규모 이민시대로서 20만 명이 바다를 건너갔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노르웨이는 중립국을 선언했지만 많은 선박들이 파괴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노르웨이는 중립을 선언했지만 독일에 5년 동안 점령당했다. 이때 독일에 협조했던 나치인 비드쿤 크비슬링은 전후 반역죄로 총살당했다. 1949년 노르웨이는 중립을 끝내고 나토의 창립멤버가 되었다.

정치적으로 노르웨이는 입헌군주제로 형식상 국가원수는 1991년 1월에 즉위한 하랄 5세이다. 내각책임제로서 의회는 임기 4년의 단원제 변형형태(165석)이다. 주요 정당은 노동당, 진보당, 보수당, 중앙당, 기민당, 사회주의 좌파당 등이 있다. 노르웨이는 유럽연합의 회원국은 아니나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다. 노르웨이는 유엔에 경제적으로 가장 크게 공헌하며 유엔군도 참여한다. 노르웨이는 1945년 유엔, 나토, 유럽평의회, 1952년 북유럽이사회의 창립국 중 하나이며, 유럽경제지역, OECD멤버이자 솅겐 조약에 서명한 국가 중 하나이다. 노르웨이는 6·25전쟁 당시 이동외과 야전병원단을 보내주었다.

전 국토의 3% 정도가 농토이며 인구의 12%가 제1차 산업에 종사하는데 식량은 자급자족이 어렵다. 노르웨이는 석유, 천연 가스, 석탄, 목재, 해산물 등이 풍부하다. 지형을 이용한 풍부한 수력발전으로 금속, 제철, 목재, 제지, 조선, 전기공업 등이 주종산업을 이룬다. 영국과 개발한 북해 유전에서 1975년부터 시작된 원유 및 천연가스 생산은 경제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 노르웨이 주 수출품의 45%가 원유(세계 4번째)와 가스(세계 3번째)이고, 이것들이 20% 이상 GDP를 차지한다. 또한 중국 다음의 세계 어획량 2위로 연어, 청어, 정어리 등이 가장 많이 잡힌다. 원양 포경업은 최근 쇠퇴했지만 북부 르흐딘에 포경기지가 있다. 현재 세계7위의 무역액에 상선보유 세계 4위로서 세계 제9위의 해운 수입을 올린다. 노르웨이는 1970년 이전엔 부국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스웨덴보다 부강해지며 많은 스웨덴인들이 노르웨이에 일자리를 찾아 들어온다. 노르웨이 사람의 생활수준은 매우 높고 1971년 완성된 국민사회보장계획에 따라 전국민에게 무료교육, 의료혜택, 실업수당, 노후연금 등 완벽한 사회보장이 제공된다.

국내 교통은 육상, 해상 양면에서 지형이 남북으로 길고 산과 피오르드 장애 때문에 운송에 많은 비용이 든다. 철도 건설이 진행되나 수상 교통의 역할이 큰데 이 나라의 대도시는 항구 중심으로 발달해 있다. 또 서해안을 따라 북부까지 도시가 있는데, 함메르페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북쪽의 도시로서 무역의 중심이며 특히 어획물의 거래가 성하다.

인종은 대부분이 게르만족인 노르웨이인이며 기타 켈트족이 있다. 노르웨이 주민은 금발과 파란 눈을 지니며 키가 크며 장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랩(Lapp)족은 북부 노르웨이에만 살며 용모, 언어, 문화가 모두 이색적이다.

주 언어인 노르웨이어는 타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언어와 관련이 있다. 노르웨이어는 단일한 언어가 아니라 보크몰어(Bokmål)와 뉘노르스크어(Nynorsk)라는 저마다의 문어 체계를 갖춘 표준어가 둘 있다. 오슬로 중심의 동부와 남부는 보크몰어(85%)를, 베르겐 중심 서부와 북쪽 지방은 뉘노르스크어(15%)를 사용한다.

‘인형의 집’을 쓴 극작가 헨리크 입센과 동화작가 알프 프뢰뤼센이 유명하다. 에드바르 그리그는 그의 작품 페르귄트를 위한 음악을 작곡했고 ‘절규’로 유명한 에드바르 뭉크는 후기 인상파 화가이다. 탐험가 프리티오프 난센, 로얄 아문젠 그리고 1980년대 팝그룹 a-ha도 노르웨이 출신이다.

노르웨이는 국교가 루터교이다. 루터교 의식에 따라 교회에서 왕의 즉위식부터 세례, 결혼, 장례 등이 행해진다. 개신교 국가이지만 이슬람, 불교, 로마카톨릭 등의 종교가 다 보장된다. 2011년 기준 종교 분포는 기독교 83.6%(루터교 : 79.4%), 비기독교 2.7%, 이슬람교 2.1%, 기타 0.02%, 무교 13.6% 등이다.

피오르드의 나라 ‘노르웨이(Norway)’는 어디에서 유래되었을까?

노르웨이는 두 개의 공식적 이름이 있는데 Nynorsk(뉘노르스크)어인 ‘Noreg(고 노르드어 Noregr)’와 Bokmål(보크몰)어인 ‘Norge(고 노르드어 Noregi(Noregr의 여격))’다. ‘Norway’는 고 노르드어 ‘norðrvegr(북쪽 방향, 북쪽으로 향하는 길)’에서 유래됐는데 이 단어는 이에아트족과 데인족(덴마크 사람)들이 서부 노르웨이 해안가를 지칭하는 것이었는데 독일의 ‘suðrvegar(남쪽 방향)’와 발트해 지역의 ‘austrvegr(동쪽 방향)’와 대조를 이룬다. 언어학 교수 Magnus Olsen은 ‘norðrvegr’가 노르웨이의 첫번째 왕 Harald Fairhair의 고향인 노르웨이 남서부 다도해 안쪽의 항해로를 지칭했다고 썼는데 Harald Fairhair 때문에 ‘norðrvegr’가 국가 전체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확대되었다. ‘Norvegr’는 음절 ‘nor(ve)(협소한, 뉘노르스크어 norve)’와 ‘-(ve)gr(노르웨이 해협을 통과하는 항해로, 뉘노르스크어 veg)’는 ‘해협을 통과하는 협소한 길’로 번역된다. 849년 라틴어 문서에서 ‘Northuagia’가 언급되는 반면, 900년 프랑스 연대기는 ‘Northwegia’와 ‘Norwegia’를 사용했다. 할로가랜드의 Ohthere가 9세기 말 영국의 알프레드 대왕을 방문했을 때 노르웨이는 ‘Norðwegr(northway)’와 ‘norðmanna land(Northmen’s land)’로 불렸다. 고 노르드어 ‘norðmaðr’는 9세기에 ‘Nortmannus(Norseman, 바이킹)’로 라틴어화 됐는데 노르만족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노르웨이가 기독교화된 후 ‘Noregr’와 “Noregi’는 가장 일반적인 단어가 되었으나 15세기경 새로운 형태의 ‘Noreg(h)’와 ‘Norg(h)e’가 중세 아이스란드 사본에서 발견되며 이들이 우세해졌고 오늘날까지 살아 남았다. ‘norðr(north)’와 ‘vegr(way)’가 결합한 고 노르드어 ‘Norvegr(north way)/ Norðvegr’가 고대 영어 ‘Norweg, Norþweg’로 차용되었다. 이 단어가 중세 영어 ‘Norwey/ Norwei’로 발전을 하며 현대의 ‘Norway’로 최종 정착을 했다. 다른 한편으로 1607년 기록된 형용사 ‘Norwegian’은 중세 라틴어화된 이름 ‘Norvegia/ Norwegia’에서 파생되었는데 ‘Norwegian’에는 고대 영어 철자 ‘-weg’가 살아남아 있다.

김권제 문화칼럼니스트
김권제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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