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재발견 81 - 호수의 나라 ‘핀란드(Finland)’]
[문화의 재발견 81 - 호수의 나라 ‘핀란드(Finland)’]
  • 최정윤 기자
  • 승인 2019.06.04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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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Suomi, Finland)는 북유럽의 국가로 공식 명칭은 핀란드 공화국(Suomen Tasavalta, Republiken Finland)이다. 해안선의 길이는 1250㎞, 면적이 33만 8145㎢인데 헬싱키(Helsinki)가 수도다. 남쪽은 발트해, 핀란드 만을 통해 에스토니아와 가깝고, 북쪽은 노르웨이, 서쪽은 보트니아 만 등의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스웨덴과 국경이 닿아 있다. 동쪽에서 남쪽에 걸쳐 러시아의 카렐리야와 육로로 국경을 접하고 있다. 핀란드는 남 핀란드 주, 서 핀란드 주, 동 핀란드 주, 우울루 주, 라피 주, 올란드 주 등 6개의 주로 구성되어 있다. 본토 서남쪽에 위치한 올란드 제도는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분야에서 상당한 자치를 누린다.

핀란드의 지형은 대체로 평평하며 최고봉은 북쪽 사미 주 해발 1,328m 할티툰투리 산이다. 국토의 대부분은 빙하에 깎여 형성된 호수와 섬이 많다. 그래서 핀란드는 호수와 섬의 나라로 불리는데 호수 187,888개, 섬 179,584개가 있다. 핀란드의 큰 호수는 네시 호, 빠이엔네 호, 사이마 호(Saimaa), 오리 호, 삐에리넨 호, 오울루 호, 로카 호, 이나리 호 등이 있는데 사이마 호는 유럽에서 6번째로 크다. 섬들은 대부분 서남쪽에 있다. 핀란드는 호수 이외에도 육지의 68%가 북방 침엽수림으로 덮여 있다. 핀란드 국토의 4분의 1 정도는 북극권이라 여름에는 백야 현상이 관찰된다. 최북단에서는 여름에 73일 동안 해가 지지 않고, 겨울에는 51일 동안 해가 뜨지 않는다.

역사를 보면, 기원전 1500년경 중앙 아시아 지역에서 우랄어족 언어를 쓰는 핀족이 서진해 기원 후 1세기에 지금의 핀란드 남부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12세기 중엽 스웨덴 왕 에리크 9세의 십자군이 핀란드를 정복해 스웨덴의 지배가 시작됐다. 이후 스웨덴 왕들은 핀란드에서 스웨덴 영토를 넓혔고, 1397년 포메라니아의 에리크가 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의 연합왕으로 즉위할 때 핀란드도 이에 편입되었다. 1523년 구스타브 1세 바사는 스웨덴을 독립 왕국으로 만들면서 핀란드를 이에 포함시켰다. 이후 스웨덴과 함께 핀란드도 루터교로 개종하는 종교개혁이 일어났는데, 마르틴 루터에게 수학한 미카엘 아그리콜라의 공이 컸다. 17세기 초 스웨덴 왕 구스타브 2세 아돌프는 핀란드를 동방 전초 기지로 활용했다. 크리스티나 여왕은 핀란드에서 문예를 크게 진흥시켜 투르쿠 대학이 세워졌다. 스웨덴 왕 칼 12세의 무리한 대북방 전쟁(1700~1721년)에서 핀란드는 러시아의 대대적 침공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구스타브 3세가 러시아와 전쟁(1788~1790년)을 하는 사이 핀란드 장교들이 무장봉기를 했다. 나폴레옹 전쟁 중 핀란드 영토를 둘러싼 열강의 외교전으로 1809년 러시아가 핀란드를 점령하여 대공국으로 통치했다. 이에 핀란드인의 독립운동이 불붙었고 엘리아스 뢴로트는 1835~1849년에 서사시 칼레발라를 썼다. 러시아의 끈질긴 러시아화 정책에도 1917년 12월 6일 의회 결의로 독립을 선언했다. 제1차 세계대전 말기인 1917년에 핀란드는 독일제국 공국인 헤센-카셀가를 핀란드의 왕가로 받아들여 독일제국에서 책봉을 받는 형식상 제후국이 되었다. 1918년 1월 27일 소련 지원의 핀란드 공산군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독일제국 지원의 핀란드 정부군이 5월 15일 진압했다. 한편 1918년 11월 11일 독일 제국이 항복해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핀란드는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부터 소련과 2차례 전쟁을 했는데 명장 칼 구스타프 만네르헤임 장군의 지휘로 상당한 전과를 거두었으나 끝내 패배했다. 이전부터 소련에 대한 악 감정이 전쟁 후 더욱 악화되었다. 전쟁 후 핀란드 정부는 소련과 서유럽 사이에서 중립을 표방하며 경제발전에 힘을 쏟았다. 소련의 영향으로 마셜 플랜을 받지 못했고 나토와 유럽공동체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자유 민주 정권을 유지하며 자본주의 경제권의 경제정책을 쓰고, 외교, 국방 측면에서 공산권과 가까웠지만,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가맹하지 않았다. 소련 붕괴 후 서방 진영에 접근하여 1994년에는 EU 가입에 합의하고, 2000년 유로를 도입했다.

핀란드는 소련 영향권의 냉전 시대에도 민주주의를 지켰다. 임기 6년의 대통령에게 강력한 권한이 부여된 이원집정부제 공화제로서, 의회는 임기 4년의 단원제(200석)이다. 총리는 부총리와 장관과 함께 내각을 구성한다. 의회는 헌법 개정, 내각 해임 및 대통령이 발동하는 거부권을 무효화할 권한이 있다. 유럽 최초로 1906년 보통선거를 실시 이후 국회는 우파인 보수당, 국민연합당, 농민당과 좌파인 사회민주당, 좌익연합 등의 정당이 지배해왔다. 대외적으로 중도우파를 표방한다. 외교정책은 이른바 ‘파시키비 케코넨 라인’이라는 군사비동맹중립정책으로 요약되며, 이는 소련의 위협에서 핀란드의 서구 민주주의를 보존하려는 것으로, 중립적인 위치에서 동서 양 진영과의 활발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서 강대국간 분쟁에 휘말리지 않으려 한다. 핀란드 헌법의 특이 점은 헌법재판소가 없고, 대법원은 어떤 법률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릴 권한이 없다. 핀란드 이외에 헌법재판소가 없는 나라는 네덜란드와 성문 헌법이 없는 영국뿐이다.

전국토의 72%가 침엽수림으로 임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2차대전 이후 영국, 프랑스 등이 국유화를 진행할 때 핀란드는 국유화를 기피했다. 1973년 유럽공동체와 자유무역을 위해 무역장벽을 완화하고 산업의 시장경쟁력을 강화했다. 1980년대 거품경제가 붕괴하며 1991~1993년까지 심각한 경기 후퇴가 있었다. 핀란드는 1980년대 이후 농업 및 임업 중심의 경제 체제에서 휴대 전화의 생산량이 세계 1위에 오르는 등 첨단산업 선진국으로 변화를 했다. 서비스 산업이 전체 경제의 65.7%를 차지하고, 공업이 31.4%를 차지한다. 주요 공업 부문으로는 전자 21.6%, 기계, 자동차, 금속공업 21.1%, 삼림공업 13.3%, 화학공업 10.9% 등이 있다. 150년 전 제지업체로 시작한 NOKIA와 Linux가 유명하다. 법률가, 의사는 여성이 절반을 차지하지만 남성에 비해 정규직이 어려우며 젊은 여성에 계약직 일자리가 많다.

민족 구성은 우랄족의 핀란드인이 93%, 스웨덴인이 6%, 사미인, 러시아인과 기타 민족은 1%를 차지한다.

핀란드어와 스웨덴어가 공용어인데 스웨덴어는 과거 스웨덴 지배 영향으로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비율상으로 핀란드어는 93.4%, 스웨덴어가 5.9%이다. 모든 도로 표지판, 거리의 이름, 경고문 등이 양 언어로 표기되지만 대부분 생활에서 핀란드어가 주로 쓰인다. 스웨덴어는 대부분 남서부의 올란드 제도에서 쓰이고 있지만, 이미 핀란드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소수파라 불린다. 북부의 사미인의 사미어는 1999년 헌법개정에서 준공용어로 명기되었다. 대다수 국민들이 영어에 능통하고 일부는 독일어나 러시아어를 구사하며 소수는 에스토니아어를 쓴다.

종교는 개신교(복음 루터교)가 89%, 러시아 동방정교회가 1%, 무종교 9%, 기타(대부분이 이슬람교) 1% 정도이다.

최초의 핀란드어 책을 쓰고 신약성서를 핀란드어로 번역한 주교 미카엘 아그리콜라(1510~1557년)는 핀란드 문학의 아버지로 칭송된다. 19세기에 엘리아스 뢴로트가 집필한 핀란드의 민족 서사시 ‘칼레발라’는 핀란드 전통 문화에 대한 큰 관심을 상기시켰다. 소설가 프란스 에밀 실란패는 1939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소설가 미카 발타리도 전 세계에 알려져 있다. 음악가는 ‘필란디아’를 작곡한 장 시벨리우스가 유명하다. 핀란드 전통 음악에는 하프와 비슷한 현악기인 칸텔레가 쓰인다. 핀란드는 알바르 알토(Alvar Aalto)를 비롯한 유명한 건축가를 많이 배출하였다. ‘사우나(sauna)’는 핀란드의 전통어이다. 이 단어는 핀란드어 중에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낱말 중의 하나이다.

올란드 제도를 제외한 학교에서는 핀란드어와 스웨덴어가 필수이고 영어 및 기타 언어에 대한 교육을 한다. 스웨덴인들은 보통 종합학교 7학년부터 스웨덴어를 배우는데 현재는 영어에 중점을 두며 종합학교 3학년 정도부터 영어를 배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구별이 없이 종합학교 9년, 고등학교 3년의 일명 9-3제를 채택하며 종합학교 9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 사이에 진로 탐색의 1년 간 휴학을 채택한다. 그래서 대학 진학 전에 13년을 공부한다. 대학은 모두 국립으로 쉽게 들어가나 교육 수준은 세계 교육계에서 "핀란드 메쏘드(핀란드 방식)"로 주목할 만큼 높다. 학생들은 경쟁에 의한 상대 평가가 아닌 달성도에 의한 절대 평가로 평가된다. 종합학교 교육의 특이점은 저성적 학생이 특별 학급에 배정되거나, 보충 수업을 받는 것이다. 이처럼 학력을 차별화하여, 저학력 학생을 개별 교육으로 학업성취도를 보충해 줌으로써 학생이 학교를 원만히 다니게 해준다. 핀란드 학교는 주 5일제이며 의무 교육이지만 유급 제도가 있고,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대다수 학비가 무료이고 한 교실을 담당 교사가 1명이 아닌 3명이다.

의료혜택, 실업수당, 평생무상교육, 노후연금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사회보장제도를 택하고 있다. 내정 면에서는 선진적인 북유럽 형의 복지국가라는 인상이 강하다.

호수의 나라 ‘핀란드(Finland)’는 어디에서 유래된 말일까?

‘Finland’란 이름은 비석들에 새겨진 3개의 룬 문자에 의해 글로서 처음 알려졌다. 두 개는 스웨덴 지방 Uppland에서 발견되었는데 비문에 ‘finlonti’라 새겨져 있다. 다른 하나는 발틱 해 Gotland에서 발견됐는데 ‘finlandi’라 새겨져 있으며 13세기에 제작된 것이다. 나라 이름은 부족명 Finns(핀) 족과 연관이 있다고 추정되는데 서기 98년경 처음으로 알려졌다. 궁극적으로 ‘Finland’는 고 노르드어 ‘Finnland(핀족의 땅)’에서 유래되었다. 다른 이름 ‘Suomi(Finnish for Finland)’의 기원은 불확실 하지만 발틱 조어 ‘źemē(land)’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 유력하고 타 대안으로 인도-유럽어 ‘ghm-on(man)’에서 차용된 ‘ćoma’가 제시된다. 이 단어는 원래 핀란드의 지방만을 지칭했으나 후에 핀란드 만의 북부 해변을 지칭했다. 이전의 이론들은 ‘suomaa(fen land)/ suoniemi(fen cape)’로부터 파생되었다고 하는데 ‘saame(Sami, Lapland의 핀인과 우고르인)’과 ‘Häme(내륙 지방)’사이에서 평행선이 그려지지만 이들 이론들은 한물 갔다고 여겨진다. 12~13세기에 ‘Finland’란 용어는 대부분 ‘Turku(Åbo)’주변 지역을 언급하는 것이었는데 후에 핀란드 지역으로 알려진 곳이고 다른 지역들은 ‘Tavastia’와 ‘’Karelia’로 불렸다. 15세기에 ‘Finland’는 보트니아 해 동부 전체 지역을 지칭하는 일반적 이름이 되었다.

김권제 문화칼럼니스트
김권제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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