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재발견 80 - 안데르센의 동화 나라 ‘덴마크(Denmark)’]
[문화의 재발견 80 - 안데르센의 동화 나라 ‘덴마크(Denmark)’]
  • 한반도경제
  • 승인 2019.05.31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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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왕국, 약칭 덴마크(덴마크어 danmark)는 북유럽 국가로 수도가 코펜하겐이다. 덴마크는 윌란 반도와 여러 섬으로 되어 있는데 빙하 침식으로 산이 별로 없고 평야가 많은데 전에 많던 황무지는 이제는 개간이 많이 되었다.

기후는 멕시코만류 및 대서양 편서풍 영향으로 겨울에도 위도에 비해 온난하고, 여름에는 서늘하여 기온의 연교차가 적다. 그러나 연중 바람이 많고 겨울에는 기후 변화가 심하다. 편서풍으로 풍차를 이용해 동력을 만들어 내지만 윌란 반도 서부에는 강한 바람을 막기 위해 새로이 개척한 농지 주변이나 독립가옥 주위에 방풍림을 조성한다. 가장 추운 1월의 전국 평균 기온은 영하 1.5℃이고, 가장 더운 7월의 전국 평균기온은 17℃이다. 5~8월은 낮 시간이 거의 18시간 지속된다. 전국 연 강수량은 650mm이며 강수 분포는 대체로 균등하나 7∼12월, 특히 8월에 비가 많이 온다. 지역적으로는 서부가 강수량이 많고 동부로 갈수록 적다.

역사를 보면, 고대부터 윌란(유틀란트) 반도에 데인 족이 살았는데 샤를마뉴 대제의 북진 정책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구드프레드 왕은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 공격을 잘 막아내며 811년 프랑크 왕국과 아이더 강을 국경으로 정하는 합의를 맺었다. 바이킹의 해상원정은 8세기 말부터 시작되었고, 10세기에 기독교가 전래되었다. 11세기 초 크누트 대왕(재위 1014∼1035) 때 덴마크-노르웨이-잉글랜드(동군연합)의 왕위를 겸하는 대왕국이 성립됐다. 그의 사후 왕국이 분열되어 약소국으로 전락했으나, 크누트의 조카 스벤 2세에 의해 로마 교회와 밀접한 신 덴마크 왕국이 건설됐다. 스벤 2세 사후 1074~1134년까지 그의 다섯 아들이 차례로 왕위에 올랐고, 그 동안 앵글로색슨의 세력하의 덴마크교회가 함부르크 세력에 들어갔다가 1104년경 룬드를 대주교구로 한 독자적 국교회를 가졌다. 그러나 1134년 이후 교회와 국가의 분쟁이 지속되다가, 1157년 발데마르 1세(재위 1157∼1182)가 국내를 통일하고 발데마르 왕조를 세웠다. 그는 군사력을 재편해 독일에 대항하고 발트해의 슬라브 세력과 싸웠는데, 그 때 슬라브 침입에 대비해 셸란 섬에 구축한 성채가 오늘날 코펜하겐의 기원이 되었다. 발데마르 2세 때 정치, 경제적 발전이 되었으나, 그가 죽자 다시 왕, 교회, 귀족 내분으로 왕권이 약화되고, 발트 해 지배 및 슐레스비히의 영유권을 둘러싼 스웨덴, 노르웨이, 한자동맹간 항쟁이 지속되어 왕국이 약해졌다. 발데마르 4세 사후 그의 딸 마르그레타는 남편 올라프 2세(재위 1375∼87)가 왕위에 오르자 섭정이 되어 통치하다가 호콘 6세, 올라프 2세의 사후인 1387년 덴마크 및 노르웨이의 군주로 승인 받았고 1389년 스웨덴 왕을 겸하게 되었다. 동군연합 형태의 3왕국 통합은 1397년 칼마르 동맹으로 정식 승인되었다. 1448년 덴마크의 왕조는 올덴부르크가로 바뀌었으나 칼마르 동맹은 유지되었다. 1520년 덴마크 크리스티안 2세가 독립을 요구하던 스웨덴과 전쟁을 벌여 보게순 전투에서 스웨덴의 스투레 일파를 격파하고 스톡홀름에 입성해 분리주의자들을 제거했다. 그러나 스웨덴은 다시 봉기하여 독립을 쟁취하며 1523년 칼마르 동맹은 해체되었다. 덴마크 종교개혁은 크리스티안 3세에 의해 추진되어 루터교가 받아들여 졌고, 노르웨이는 자치운동이 완전히 봉쇄당한 채 사실상 덴마크의 속국이 됐다. 크리스티안 3세 때 원로원 등 귀족 세력의 강화로 경제 발전 및 학자 배출 등 국가번영의 기운을 보였으나, 덴마크의 프레데릭 2세 때 발트해 주도권을 놓고 덴마크, 스웨덴, 폴란드, 뤼벡 간 ‘북방 7년 전쟁’이 일어났고, 크리스티안 4세 때는 2차에 걸친 스웨덴과 싸움으로 국토를 손실했다. 1660년 덴마크의 프레데릭 3세는 루터교 성직자와 결합해 왕위 세습제를 승인 받고, 1665년 국왕의 절대주권을 승인 받아 절대군주제를 확립했다. 1788년 농노제가 폐지되고, 1797년 자유무역 원칙에 입각한 관세법이 성립되어 덴마크 경제가 활력을 얻었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영국 함대의 공격으로 나폴레옹 편을 든 덴마크는 영국, 러시아, 스웨덴 등과 싸운 끝에, 1814년의 킬 조약에 의해 4세기에 걸쳐 지배했던 노르웨이를 스웨덴에 할양했다. 그래서 덴마크의 영토는 현재의 덴마크와 아이슬란드, 페로 제도, 그린란드로 국한되었다. 국내적으로는 프레데릭 절대왕정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1842년 입헌적 대의정치를 주장하는 국민 자유당이 결성되었다. 1849년 덴마크 프레데릭 7세는 자유주의자들의 요구로 전제정치를 포기하고, 자유헌법을 성립시켜 입헌군주제를 수립하였다. 1864년 프로이센과 전쟁에 패해 홀슈타인과 슐레스비히를 상실했으나,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하면서 배르사이유 조약으로 1920년 북슐레스비히를 수복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중립을 지켰으나 독일 근처라 민간인 상선들이 독일 잠수함에 격침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에 점령되어 1944년까지 고초를 겪었다. 덴마크 사람들 중 유대인들이 독일군에게 끌려갔으나 중앙 유럽 국가들에 비하면 비율이 미미하였다. 1945년 5월 덴마크가 연합군에 의하여 해방되었다. 1944년에는 덴마크의 영토였던 아이슬란드가 독립했다.

덴마크는 대의제 민주주의에 기반한 입헌 군주국이다. 현재 국가 원수는 여왕 마르그레테 2세이며 징병제를 실시한다. 이 나라의 자치령인 페로 제도와 그린란드는 2005년부터 경제, 외교적으로 자치를 얻었다.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오랫동안 같은 군주 밑의 연합으로 묶여 있어서 형제의식이 강하다.

주민은 게르만계의 덴마크인이 거의 대부분이며 다른 민족은 적게 존재한다. 인구는 약 550만 명 정도이다.

덴마크어가 공용어이고 덴마크인과 스웨덴인, 그리고 노르웨이인은 서로 자국어로 말해도 무리 없이 서로 통한다. 영어와 독일어, 프랑스어도 외국인들 사이에서 사용된다. 덴마크의 문자 해독률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문맹률이 매우 낮은 높은 교육열을 자랑한다. 이 나라의 자치령인 페로 제도와 그린란드 역시 높은 교육열이 높다.

루터교가 국교이교 그 외에 감리교, 모라비안, 구세군 등의 다른 개신교 종파들과 동방 정교회가 존재한다. 2013년 조사에 따르면 덴마크인의 79.1%가 루터교 종파인 덴마크 교회에 속하고, 로마 카톨릭은 0.55% 존재한다. 이슬람교, 유대교 등의 타 종교는 아주 적다.

덴마크 본토는 세계적인 경제 수준으로 협동조합을 통해 농업을 발달시켰는데 젖소를 많이 사육하는 낙농 국가이며 낙농 제품이 큰 수출품이다. 돼지의 사육도 활발해 햄과 베이컨이 비싼 가격으로 수출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어린이 장난감 회사 레고 본사가 있다. 동화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1805~1875)이 세계적인 작가이다.

안데르센의 동화 나라 ‘덴마크(Denmark)’는 어디에서 유래가 되었을까?

‘Denmark’내의 ‘Danmark’ 단어의 첫번째 기록은 어란석인 2개의 Jelling stone에서 발견되는데 하나는 Gorm the Old(955년)가 세웠고 다른 하나는 Harald Bluetooth(965년)가 세웠다고 믿고 있다. 비록 큰 돌에는 대격 ‘tanmaurk’의 형태로, 작은 돌에는 소유격 ‘tanmarkar’가 ‘Denmark’란 단어로 사용되지만 둘 중 더 큰 돌이 덴마크의 세례 증서로 널리 인용된다. 덴마크 사람들은 대격 ‘tani’ 혹은 ‘Danes’로 불린다. 대부분 지침서에서 접두사 ‘Dan’은 ‘flat land’ 의미에서 파생하여 사람을 지칭하는데 게르만어 ‘Tenne(탈곡장, 타작마당)’와 영어 ‘den(cave)’과 관련이 있다. ‘-mark’는 남 Schleswig’의 숲 경계를 언급하는 ‘woodland/ borderland’란 의미다. 덴마크의 ‘Danmark’는 덴마크어 ‘dansk(덴마크의, 덴마크인의)’와 고 노르드어 ‘merki(boundary)’ 혹은 ‘mǫrk(borderland)’가 결합된 단어인데 고대 영어 ‘Danemearc’가 동족어이다. 덴마크는 데인족의 경계 혹은 덴마크(데인족의 나라)의 경계란 뜻이다.

김권제 문화칼럼니스트
김권제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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