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재발견 72 - 전쟁의 폐허 속에서 부흥한 ‘독일(Germany, Deutschland)’]
[문화의 재발견 72 - 전쟁의 폐허 속에서 부흥한 ‘독일(Germany, Deutschland)’]
  • 한반도경제
  • 승인 2019.05.10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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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연방공화국, Deutschland)은 중앙 유럽 국가로 북쪽 덴마크와 북해, 발트해, 동쪽 폴란드와 체코, 남쪽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서쪽 프랑스, 룩셈부르크, 벨기에, 네덜란드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지형은 남고 북저로 알프스 지대, 중앙 구릉 지대, 북부 독일 평야 구역으로 나뉜다. 도나우 강 외에 큰 강은 북해와 발트 해로 흘러들며 라인 강, 베저 강, 엘베 강, 폴란드와 국경을 이루는 오데르 강이 주요 강이다.

기후는 북서부 지역은 해양성, 남동부는 대륙성기후이다. 겨울은 한랭하고, 여름은 온화하나 변덕스럽다. 봄이 대체로 늦고 여름이 짧다. 7월 평균 기온은 전체적으로 16~19℃가 넘으며, 12~3월의 겨울은 추위가 혹독해 라인강이 언다. 6월까지 샤프트케르테란 추위가 종종 급습하며, 연중 갑자기 비오는 날이 많다.

역사를 보면, 게르만족은 북유럽 중 가장 늦은 로마 이전 청동기 시대에 처음 문명이 발생 한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1세기 남부 스칸디나비아와 북독일에서 남, 동, 서쪽으로 이동했다.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푸블리우스 큉크틸리우스 바루스 장군이 게르마니아(라인강~우랄산맥에 이르는 영토)를 침공했는데, 서기 9년 바루스의 3개 로마 군단이 토이토부르크 숲에서 케루스키족 족장 아르미니우스에게 전멸당했다. 이로써 라인 강~도나우 강의 독일 땅은 무사했지만 오스트리아, 남부 바이에른, 서부 라인란트 지방은 로마 속주가 되었다. 260년경 게르만족은 로마 영내로 들어왔다. 서로마를 멸망시킨 오토 왕가 치세(919~1024년)에 로타링기아, 작센, 프랑켄, 슈바벤, 바이에른 공국을 합방했으며, 962년 독일왕이 이 지역을 지배하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즉위했다. 잘리어 왕가(1024~1125년)때 북부 이탈리아와 부르고뉴 지방을 흡수했으나, 서임권 분쟁으로 권력을 잃었다. 1315년 대기근, 1384~1350년 흑사병으로 인구가 급감했다.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루터교회는 1530년 이후 독일 내 여러 나라들의 공식 교회가 되었다.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간 30년 전쟁으로 독일은 황폐화되고 인구 30%가 줄었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전쟁은 끝났으나, 신성 로마 제국은 여러 독립 공국으로 갈라졌다. 1806년 나폴레옹 전쟁으로 신성 로마 제국이 멸망했고, 나폴레옹 몰락후 1815년 빈 회의에서 39개 주권국 연맹체인 독일연방이 성립했다. 왕정 복고에 대한 이견과 프랑스혁명으로 자유주의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 때 검은색, 붉은색, 황금색은 민족주의 운동의 상징이었으나, 후에 독일 국기의 색이 됐다. 1848년 프랑스 공화정이 성립하자, 독일 지식인들과 평민들도 혁명을 일으켰다. 프로이센 빌헬름 1세는 비스마르크를 총리로 임명했고, 1866년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전쟁 승리로 비스마르크는 북독일 연방을 창설했고 오스트리아 제국은 독일 국가들의 내정 간섭이 금지 되었다.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승리로 1871년 1월 18일에 베르사이유 궁에서 독일 제국 건국이 선포되었다. 프로이센 호엔촐레른 왕가가 독일 제국 전체 황제를 겸했고 오스트리아 외의 독일 모든 지방을 통일했다. 통일 후 그륀더차이트 시대 독일 제국은 영국, 프랑스 등과 마찰을 피하기 위해 해외 식민지 경쟁 대신 "식민지 대신 화학을"이라는 슬로건으로 산업혁명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독일은 노동조합과 사회민주당을 주축으로 한 사회주의 운동이 표면화 되었다. 빌헬름 2세는 유럽의 타 열강처럼 제국주의 정책으로 이웃 나라들과 마찰을 빚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와 관계를 맺은 것 외에 독일은 점차 고립됐다. 독일은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어 독일령 동아프리카 및 남서부 아프리카, 토골란트, 카메룬 등을 확보했다. 1914년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사라예보에서 살해당하며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동맹국 측의 독일은 연합국에 패했다. 1918년 11월 독일혁명으로 빌헬름 2세와 독일의 모든 제후가 폐위되었다. 그해 11월 11일에 휴전 협정 체결로 전쟁이 끝났으며, 1919년 6월 베르사유 조약에 서명했다. 독일에서는 이 조약을 치욕스럽게 여겼고, 조약의 가혹으로 이후 나치즘이 발흥한다. 독일 혁명은 1919년 8월 11일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대통령이 바이마르 헌법에 서명하며 헌법이 발효되고 공화국이 공식 출범하며 끝난다. 베르사유 조약의 가혹한 조건과 대공황, 불안정한 정부들의 난립으로 독일인들은 점차 의회 민주주의와 주류 정당들을 불신했다. 바이마르 정부 수뇌부는 조약에 서명했단 이유로 배신자란 비난을 받았고, 급진 좌익 공산주의자들은 평의회 공산주의를 지지하며 ‘자본주의 지배’를 철폐하기 위한 혁명을 원했다. 여러 보수주의자들은 혁명적 극우로 쏠렸고 1932년 공산당과 나치가 의회 다수를 차지했다. 힌덴부르크는 우익 고문들의 압박으로 1933년 1월 30일 아돌프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했다. 의회에서 수권법이 통과되며 히틀러는 무제한적 입법권을 부여받고 모든 반대 세력을 제압하며 중앙집권적 전체주의 국가를 세웠고 군사 재무장에 역점을 두었다. 1938년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하고,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침공해 점령했다. 이에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하며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 1941년 6월 22일 독일은 독소 불가침 조약을 파기하고 소련을 침공했고 같은 해 미국에도 선전포고 했다. 독일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패하며 동부전선에서 후퇴했다. 1943년 9월 이탈리아가 항복했고, 1945년 5월 8일 붉은 군대가 베를린 점령 후 항복했다. 독일은 오데르-나이세 라인 동쪽 영토를 잃고 옛 동부 영토와 다른 지역에서 독일인 1,500만 명이 추방되고 여러 도시가 파괴되었다. 1949년 5월 23일에 프랑스, 영국, 미국이 통제하는 독일 연방 공화국이 들어섰고, 그 해 10월 7일 소련측 지구에 독일 민주 공화국이 되었다. 동독은 동베를린이 서독은 본이 수도가 되었다. 서독은 ‘사회 시장경제’ 체제와 연방제 의회 공화국 체제를 수립했고, 미국, 영국,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다. 1950년대 초부터 서독은 경제 발전을 이루었고 1955년 나토 가입, 1957년에는 유럽 경제공동체에 창립 회원국이 되었다. 동독은 바르샤바 조약과 소련의 정치/ 군사적 통제를 받았다. 인민민주주의 체제를 표방했으나 권력은 독일 통일사회당의 정치국원들이 독점했다. 그 대신 국가는 싼 값에 기초 생활 필수 재화를 제공했다. 동독인이 서독으로 월경하지 못하게 1961년 건설한 베를린 장벽은 냉전의 상징이다. 1989년 5월 2일 헝가리가 철의 장막을 해체하기 위해 8월 23일 국경을 개방하자 9월 11일에 동독인 수천 명이 헝가리 국경을 통해 서독으로 탈출했다. 이 사건으로 동독에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동독은 11월 국경 제한을 해제하여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1990년 9월 12일 전후 독일 점령 4개국은 항복 문서에 따른 자신들의 권리를 폐기하고 완전한 주권을 돌려주었다.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재통일을 이루었고, 옛 동독에서 편성된 다섯 주가 독일 연방 공화국에 귀속되었다. 정부 기관 재배치는 1999년에 완료되었다. 그러나 통일 후 고물가, 실업증가, 자본주의로 인한 옛 동독 사람들의 부적응 같은 여러 문제가 나타났다. 재통일 이후 독일은 유럽연합과 나토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독일은 16개 주가 각자 헌법, 정부, 재판소를 두는 연방 국가와 의원내각제 공화국으로 국가 원수는 총리이며 임기는 4년이다. 입법 기관은 연방 상원과 하원으로 이뤄진 양원제이다. 연방 의회 의원은 비례대표제와 소선거구제를 병용한 직접 선거인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선출되며, 임기는 4년이다. 연방 상원은 각 주와 특별시에서 인구 비례에 따라 임명된 대표로, 주 정부는 연방 상원을 통하여 연방의 입법과 행정 업무에 참여한다. 입법권은 연방 의회와 연방 상원 모두에 있으나 실질적 권한은 연방 의회에 있다. 2005년 총선이후 기민련의 앙겔라 메르켈이 독일 최초의 여성총리로 연임하고있다.

독일은 EU의 통합에 프랑스와 중추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유엔과 나토, G20 등 경제 협력 개발 기구, 유럽연합의 회원국이며 전 세계적 경제 대국이다. 통일 후 독일 경제는 큰 혼란을 겪었다. 통일 당시 동독 주민의 낮은 노동생산성, 기술의 상대적 낙후, 장비의 노후, 환경오염 및 사회기반시설의 낙후로 동, 서독지역의 균형 발전을 위해 막대한 투자가 불가피했다. 독일은 물리학, 기계공학 수준이 우수하며 전 세계 연구소 중 독일 연구소의 과학기술이 1위이다. 현재 독일에는 750여개의 국가 지원 연구기관이 있으며, 공공재원으로 운영되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은 막스 플랑크, 프라운호퍼, 헬름홀츠, 라이프니츠 등 4대 연구협회에 속해 있다. 농, 수산업이 GNP의 1.2%로 농업용 토지는 국토면적의 1/2이며 경작지가 32.1%, 초지가 14.7%를 차지한다. 농산물은 북부의 호밀, 감자, 중부의 밀, 사탕무, 서부의 낙농제품, 포도, 남부의 호프 등이다. 국토의 1/4인 삼림은 대부분이 침엽수림으로 제재, 펄프 원료로 이용된다. 어업은 연안어업 외에 북해, 북극해에서 조업하나, 북해 해양오염으로 어획량은 계속 감소되는데 주로 청어, 대구 등이 잡힌다. 석탄은 루르와 자르 탄전 등에서 출탄하며 가장 규모가 큰 광산물이다. 암염, 칼륨, 보크사이트, 철광석 등을 대량 산출한다. 독일 최대 공업지역은 라인, 루르 지역이다. 이곳은 조밀한 교통망과 독일 전역을 연결하는 수로망이 구축되어 있으며, 이곳 뒤스부르크항은 유럽 최대의 내륙항으로 루르 지역의 관문이다. 중화학공업의 비중이 높아 특히 자동차 공업과 철강, 전기공업, 기계금속공업, 화학공업도 높은 성능과 품질로 세계 시장에서 신뢰받고 있다. 원료를 수입해 고품질의 생산재, 반제품, 완제품을 수출하는 고도의 선진 공업형 무역구조를 가지고 있다.

교통 상황을 보면, 철도의 거리는 4만 900km이고, 이 중 16,000km가 전철이다. 주도 이상의 도로는 총연장이 221,000km에 달하고, 이 중 고속도로는 11,000km로 미국 다음 세계 2위이다. 세계 최초의 고속도로인 아우토반이 있다. 항공사는 국영 ‘루프트한자’가 있고, 90여개국과 상호 항공로가 개설되어 세계 200여 주요 도시를 연계시킨다. 프랑크푸르트, 뮌헨, 뒤셀도르프, 베를린, 함부르크 등 주요 도시에 국제공항이 있고, 특히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은 유럽 제2의 국제공항이다.

주민의 대부분은 독일인이고 동화된 켈트인, 라틴인, 슬라브인 등 복잡한 피가 섞여 독일 민족을 구성한다. 소수 민족은 덴마크인, 소르브인, 터키인, 러시아인, 세르비아인, 화교, 쿠르드족, 기타가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고유의 문화와 언어, 역사, 민족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독일의 기독교는 프랑크 왕국시대 로마 카톨릭이 도입이 되었고 신성 로마제국초기까지 크게 융성했다.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개신교가 분리된 이후 30년 종교전쟁이 있었다. 독일 국민 대부분이 기독교(로마 카톨릭과 루터교회)를 믿고, 일부는 이슬람교, 유대교, 기타 신흥 종교를 믿는다. 가톨릭은 바이에른을 중심으로 남부 독일에 많고, 개신교는 북부 독일에 압도적이다.

공식 언어는 독일어이다. 독일어는 유럽연합에서 사용되는 23개 공식 언어 중 하나이며, 유럽 위원회에서 사용되는 3개의 언어 중 하나이다. 독일에서 유래된 소수 언어는 덴마크어, 저지 독일어, 소르브어, 이디시어, 프리지아어 등이 있다.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는 터키어, 쿠르드어, 폴란드어, 러시아어 등이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부흥한 ‘독일(Germany, Deutschland)’는 어디에서 유래되었을까?

어원은 알 수 없지만 기원전 1세기 라인강 동쪽 사람들을 지칭하기 위해 시이저가 채택한 ‘Germānī(라인강 주변과 동쪽에 사는 게르만인)’에서 라틴어 ‘Germānia(게르만인의 땅)’가 유래되었다. 이 말이 고대 영어 ‘Germania’로 유입되고 중세 영어 ‘Germanie’를 거쳐서 ‘Germany’로 최종 정착을 했다. 독일어 ‘Deutschland(게르만의 땅)’는 게르만 조어 'þiudiskaz(국민의)’가 고대 고지 독일어 ‘diutisc(국민의)’가 됐고 이 말에서 ‘diutisciu land(게르만의 땅)로 되어서 최종 ‘Deutschland’가 됐는데 ‘diutisc’이 ‘deutsch’로 변화되었다.

김권제 문화칼럼니스트
김권제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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