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재발견 71 - 무적함대의 영광. ‘스페인(España/ Spain)’]
[문화의 재발견 71 - 무적함대의 영광. ‘스페인(España/ Spain)’]
  • 한반도경제
  • 승인 2019.04.25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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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식 Spain 국명은 España고 외교 등의 정식 국명은 에스파냐 왕국이다. 스페인은 북동쪽 피레네 산맥으로 안도라 공국과 프랑스, 서쪽은 포르투갈과 마주한다. 세우타와 멜리야는 모로코와 인접하며, 비다소아 강의 피센 섬은 프랑스와 공동 관리한다. 아프리카 북서부 서사하라와 인접한 카나리아 제도, 지중해 마요르카 섬 등의 발레아레스 제도와 지중해의 도서 영토를 두고 Plazas de soberanía로 칭하며 차파리나스 제도, 페레힐 섬 등을 포함한다.

평균 해발 고도 660m로 유럽에서 스위스 다음의 고산 국가로 본토의 1/3이 산지다. 북부 피레네 산맥과 대서양 연안 칸타브리아 산맥, 톨레도 산맥 등이 있으며 남부에는 시에라네바다 산맥, 중앙 고지대 평원인 메세타 고원이 있다.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3,478m 물아센이 본토 내 최고봉이고, 전 영토 최고봉은 카나리아 제도의 화산인 테이데이다. 과달키비르, 과디아나, 에브로, 타구스 등이 주요 강이고, 평야는 대부분 해안가에 있으며 과달키비르 강의 안달루시아 지방 충적평야가 가장 넓고 비옥하다. 안달루시아 평원 해안가~바르셀로나와 피레네 산맥 인근까지 지중해성 기후가 나타나며, 대륙성 기후는 마드리드 등 내륙에 나타난다. 서안 해양성 기후는 갈리시아와 비스케이 만 해안가에 나타난다. 사하라 사막이나 아프리카 대륙의 뜨거운 바람으로 남부 지방은 건조하고 빌바오 지역을 제외한 중남부 일부는 반사막 현상이 나타난다.

역사를 보면, 약 35,000년 전 현대 인류가 거주했다. 북부 알타미라 동굴 벽화는 기원전 15,000년 전 선사시대 것이다. 반도 고대 민족은 이베리아족과 켈트족인데 코임브라, 세고비아 등에 켈트족의 도시 흔적이 있다. 이베리아 족 후예 바스크족은 피레네 서부에 거주했다. 기원전 500~300년에는 페니키아인, 그리스인도 지중해 연안에 식민도시를 건설했다. 한니발 아버지 하밀카르 바르카가 세운 도시가 남아 있다. 그의 이름은 도시인 바르키노에 남았고, 이 이름에서 바르셀로나가 유래했다. 2차 포에니 전쟁 후 로마는 영토를 확장하며 기원전 210년부터 반도를 500년간 지배했다. 이들은 스페인을 ‘Hispania’라 부르며 법률, 언어, 도로 등을 정착시켰다. 제국이 쇠퇴하며 415년경 서고트족과 수에비 족, 반달 족 등이 피레네 산맥을 넘어왔다. 711년 무어인 우마이야 왕조 타리크 이븐 지야드 장군과 베르베르 연합군이 피레네 이남 안달루시아를 정복하면서 781년 동안 스페인에 이슬람 왕국이 존재했다. 반도에서 북쪽 산간 지방의 아스투리아스와 나바라, 아라곤이 독립을 유지했다. 신분 향상을 위한 종교 개종으로 10~11세기 안달루시아 주민 다수가 이슬람을 믿었다. 1085년 북부 톨레도 왕국이 기독교권에 넘어가자 모로코 모라비드 왕국이 안달루시아로 진격해 이슬람 왕국들을 통합하고 기독교 세력을 재차 몰아냈다. 그 후 기독교 6왕국 연합군이 톨로사 전투(1212)에서 승리하며 무슬림들은 남쪽 그라나다 중심의 안달루시아 남부 지방만 지배했다. 기독교 세력들이 13세기 초부터 남진하며 확장하자 이슬람은 피레네 북쪽으로 세력을 확장했지만, 프랑스 투르에서 패하며 후퇴했다. 이슬람 군대는 성지인 갈리시아를 수호하려 했으나 패했고 기독교 세력에게 코르도바를 시작으로 1236년 세비야까지 내준다. 13~15세기까지 스페인 남부와 모로코를 통치했던 마리니드 왕조는 13~14세기에 무슬림 규약 부활을 위해 재침공하나 실패했다. 1469년 아라곤 왕위 후계자 페르난도와 카스티야 왕위 후계자 이사벨의 결혼으로 공동 국왕의 왕국이 성립됐다. 1492년 그라나다를 정복해 781년 간 무슬림 지배를 끝내고 통일을 했다. 이 해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했고, 스페인 내 유대인 박해가 시작된다. 이 때 아라곤 왕국과 카스티야 왕국을 통칭하기 위해 ‘España’란 단어가 출현한다. 스페인은 통일로 종교, 정치, 군사 등에 발전하며 신 강대국이 되며 16~17세기 식민지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는데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 때가 최 전성기였다. 막대한 부로 남미와 중미, 멕시코, 미국의 남서부 지방, 필리핀, 마리아나 제도까지 차지했다. 1580년부터 포르투갈,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일부 영토를 정복하고 북부 아프리카까지 미쳤다. 금, 향신료, 진귀한 농산물을 약탈한 스페인 항해자들은 유럽에 신세계를 소개했다. 그러나 정복민에 카톨릭을 강요했고, 무적함대가 1585년 영국에 패배했다. 포르투갈이 독립하고 네덜란드도 1648년 독립한다. 유럽에 30년 전쟁이 나자 프랑스에 패했다. 17세기 후반 스페인은 쇠퇴했지만 식민지를 유지하며 19세기까지 통치한다. 18세기 초 왕위계승 전쟁은 귀족뿐 아니라 시민전쟁으로 번지며 다시 쇠락했다. 전쟁 동안 유럽과 대륙 내 강대국 지위도 잃고 영국과 오스트리아에 방대한 영토를 내주며 해상 강국 지위도 사라졌다. 스페인의 완전한 통일은 펠리페 5세가 카스티야와 아라곤 지역을 완전히 합병하면서 성취됐다. 통일 후 18세기 스페인은 막대한 영토와 부로 다시 회복기를 맞았고, 유럽 내 지위도 조금씩 나아졌다. 1763년 프랑스-인디언 전쟁 승리로 캐나다 일부 주와 미시시피 강 서부의 모든 땅을 차지했다. 1793년 스페인은 프랑스 제1공화국과 전쟁에 패해 1795년 강화 조약으로 종속국이 됐고 1796년 권력을 조제프 보나파르트에게 이양했다. 1808년 5월 2일 독립 운동이 일자 나폴레옹은 스페인을 격파하고 영국군을 몰아냈지만 러시아 침공으로 프랑스는 1814년 스페인에서 영향력을 잃었다. 이 기간에 스페인은 쿠바와 푸에르토리코를 뺀 모든 라틴 아메리카 식민지를 잃고 이전의 부와 국력 상당 부분을 상실했다. 1900~1910년대에 스페인은 서사하라와 모로코, 적도 기니를 차지했고 유럽의 아프리카 침탈에 동참했다. 1931년 제2공화국의 정권은 바스크, 카탈루냐, 갈리시아에 자치권을 부여하며 여성의 투표권을 허용한다. 좌파세력 견제를 위해 우파연합과 제휴한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모로코에서 정변을 일으켰다. 그래서 인민 전선과 국민전선 간 내전이 촉발됐고 3년 뒤 독일과 이탈리아 지원을 받은 프랑코가 승리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 불참했지만 프랑코는 추측국에 협조해 국제 사회진출에 서방 국가가 반대했다. 20세기 스페인은 좌 우 대립이 고조되며 인민 전선의 공산주가 창궐했고 교회 재산 국유화 등 빈부 격차를 개혁코자 했다. 1960년대 급진적 경제 발전이 되고, 관광 활성화와 산업 국가로서의 국가 정체성이 정립됐다. 1975년 왕정복고로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영단으로 입헌군주제에 기반한 민주주의가 시작됐다. 1979년 처음 보통 선거가 실시되고 언론, 결사, 정치의 자유가 허용되었고, 지방 자치정부가 출범했다. 그러나 바스크 등 독립 목소리가 커지며 급진적 양상으로 번지기도 한다. 스페인은 1986년 유럽 공동체에 가입했고, 2002년 1월 유로존에 편입, 새 변혁기를 맞았다. 편입 후 경제 성장률은 유럽 연합 평균을 웃돌았지만 늘어난 국부 팽창의 악영향과 대외 적자가 늘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스페인은 입헌 군주제로 양원제 국회를 갖추고 있다. 국가 원수는 국왕이며, 상하원은 직접, 간접 투표로써 선출되는데 임기는 4년이다. 행정부 수반은 총리이며, 부총리가 보좌한다. 스페인 내각의 수반인 장관은 총리가 지명한다.

스페인의 경제 규모는 세계 8위로 1999년 유로화를 도입했다. 그러나 계속된 인플레이션이 경제의 어두운 면이다. 스페인 관광은 세계 2위로, 온화하고 햇볕 많은 기후와 지리적인 요인 그리고 다채로운 관광 인프라가 갖춰져 발달했다. 스페인은 현재 태양광발전소, 풍력 발전 등 대체에너지 생산과 개발에서 선두적이다. 세계 시가총액 100대 기업 중 텔레포니카, 산탄데르 은행, 인디펙스 등이 있다.

교통 체계는 고속도로가 수도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바스크, 카탈루냐, 발렌시아, 안달루시아, 에스트레마두라, 갈리시아로 퍼져있다. 대서양을 따라 페롤~비고, 칸타브리아~지중해 지역을 잇는 고속도로가 있다. 고속철도는 유럽에서 가장 넓게 퍼져 있다. 2010년 10월부로 말라가, 세비야,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바야도리드를 잇는 3500km의 철도가 개통됐다. 마드리드 공항은 세계에서 11번째 붐비는 공항이다. 바르셀로나 공항도 중추 공항이며 말라가, 발렌시아, 세비야, 팔마 데 마요르카, 빌바오 등이 주요 공항이다.

스페인인이 다수이며, 아랍인, 프랑스인 및 포르투갈인도 있다. 20세기 후반 이후 유럽에서 출생률과 인구 증가율이 가장 낮다 보니 외국에서 많은 이민이 유입된다. 인구는 마드리드와 주변의 위성 도시를 제외한 곳은 해안가에 집중되어 있다. 언어는 스페인어(카스티야어)가 공용어이다. 그러나 일부 지역(카탈루냐어, 바스크어, 갈리시아어 등)은 지방 언어를 공용어로 쓴다. 아직도 아스투리아스레온어, 아라곤어, 아랍어 등을 소수가 사용한다. 지중해 관광지는 영어와 독일어가 쓰인다. 스페인어는 세계 4억 5200만명이 모국어로 쓴다. 종교를 보면 전체 인구 76%가 가톨릭교도이고, 19%는 특정종교를 믿지 않는다.

스페인의 문화는 반도 인종과 켈트족 및 서고트족의 영향에 로마 가톨릭, 이슬람 문화가 섞여 발전했다. 이탈리아 다음으로 많은 총 40개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있다. 건축 양식은 로마 시대와 아랍 지배 때부터 내려온 특색과 현대적인 발상이 조화를 이뤘다. 20세기에 안토니오 가우디의 등장으로 스페인 건축이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스페인 문학은 카스티야, 갈리시아, 카탈루냐 세 곳의 문학이 원류다. 스페인 문학사의 최고 걸작은 가장 오래된 12세기 ‘시드의 노래’로 이 서사시는 국토회복 운동의 영웅 로드리고 디아스 비바르를 기린 것이다. 최초 성직자 시인 곤잘로 데 베르세오는 아랍어와 히브리어 작품을 카스티야어로 번역하고 종교 시를 썼다. 역사적, 지리적 다양성에 기초한 스페인 미술은 과거 무어인의 수많은 작품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탈리아와 독일, 프랑스의 영향을 바로크 시대와 신고전주의 시대에 많이 받았다. 가톨릭교회 후원으로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수많은 미술가가 방문하여 배워옴으로써 17세기 미술과 문학 등의 전성기를 맞는다. 파블로 피카소를 비롯한 벨라스케스, 프란시스코 고야, 살바도르 달리 등 수많은 거장이 배출됐다.

무적함대의 영광을 가진 ‘스페인(España/ Spain)’은 어디에서 유래되었을까?

‘España/ Spain’의 기원은 불확실하나 일반적 설로는, 페니키아어 ‘ay-shaphanim(야생 토끼 섬)’이 고대 그리스어 ‘Hispanía’가 됐고 이 말이 이전 라틴어 ‘Hispānia’로 유입됐다. 다시 후기 라틴어 ‘Spania’를 거쳐 앵글로-노르만어 ‘Espayne’이 됐고 최종 ‘España’로 정착했다. 원래 라틴어 ‘Hispania’가 현대 ‘España’가 됐다는 설은 불확실한데 수세기 동안 많은 가설이 나왔다. 르네상스 시대 학자 Antonio de Nebrija는 ‘Hispania’는 이베리아로망스어 ‘Hispalis(서쪽 세계의 도시)’에서 왔다고 한다. Jesus Luis Cunchillos는 ‘span’의 어근에서 왔는데, 이 단어는 페니키아어 ‘spy(쇠를 만들다)’에서 왔다고 주장했는데 ‘i-spn-ya’는 ‘쇠를 만드는 땅’이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페니키아어 ‘i-Shpania(토끼의 섬(땅), 가장자리)’의 모체로 지중해 끝 스페인의 위치를 나타낸다. ‘Hispania’가 시적 표현인 그리스어 ‘Hesperia(서쪽 땅, 해지는 땅)’에서 왔을 수도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이탈리아는 ‘서쪽 땅/ 해가 지는 곳’을 의미해서 그 ‘Hesperia’라 썼다. 그래서 스페인은 이탈리아보다 더 서쪽으로 ‘Hesperia ultima’라 했다. ‘Hispania’가 바스크 말인 ‘Ezpanna(edge/ border)’에서 왔다는 설이 있는데 스페인의 지리적 위치 때문이다. 15세기 스페인 유대계 학자인 Don Isaac Abrabanel과 Solomon ibn Verga는 민간신화를 주장한다. 이들은 예루살렘 포위 때 바빌론 왕과 동맹한 필로스에 의해 배를 타고 스페인에 처음 온 유대인에 대해 썼다. 이 사람은 그리스인이었으나 헤라클레스 왕의 조카인 Espan과 결혼해 왕족이 되었다. 헤라클레스는 그의 조카 에스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그리스로 떠났는데 그녀 이름이 ‘España’가 됐다는 것이다.

김권제 문화칼럼니스트
김권제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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