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재발견 36 - 12사도를 기억하는 도시. ‘산티아고(Santiago)’]
[문화의 재발견 36 - 12사도를 기억하는 도시. ‘산티아고(Santiago)’]
  • 최정윤 기자
  • 승인 2019.01.0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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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데 칠레(Santiago)는 칠레의 수도이다. 라코루냐 시 남서쪽 51㎞ 거리에 있으며 사르 강과 사렐라 강의 합류지점에 인접한 중부 계곡에 위치하며 1962년 월드컵 대회가 열린 4개 도시 중 하나로 남미 유수의 세계 도시이다.

도시의 역사를 보면 산티아고 분지에 인간이 처음 정착한 시기는 기원전 제10천년기이다. 이들은 주로 수렵-채집형 유목민으로 안데스 산맥의 눈이 녹을 때 구아나코를 찾아 해안에서 내륙으로 이동했다. 800년경 Mapocho 강가에 정착의 농경사회가 형성되었다. 이들은 옥수수, 감자, 콩을 경작하고 낙타과 짐승을 길들였다.

산티아고는 1541년 2월 12일에 스페인의 정복자 페드로 데 발디비아(Pedro de Valdivia)에 의해 ‘Santiago de Nueva Extremadura’란 이름으로 도시가 건설되었다. 여기에 도시를 건설한 이유는 온화한 기후와 중앙을 횡단하는 마포초 강이 천연 방어선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페인이 지배하던 동안 산티아고는 큰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체커판 모양의 도시윤곽은 1800년대초 북쪽과 남쪽, 특히 서쪽으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마포초 강 남쪽 제방은 물이 빠져 공공 산책로로 바뀌었고, 현재 알라메다베르나르도오이긴스란 이름으로 불린다. 칠레 독립전쟁(1810~18) 때 1818년에 베르나르 오이긴스, 호세 데 산 마르틴의 활약으로 칠레가 해방되면서 산티아고는 칠레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고 국가의 부가 이곳으로 집중되었다. 식민지시대 건축물은 총독 관저,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조폐국, 영사 재판소, 산프란시스코 교회, 산토도밍고 교회, 레콜레타 프란시스카나, 자비의 교회 등이 있다. 코우시뇨 궁전이 대표적인 19세기 건축물이며 미술궁전, 국립도서관, 연합 클럽 등에 20세기 초의 양식들이 반영되어 있다. 현대식 건축물은 비타쿠라, 산루이스 산, 로쿠로에 있는 주거지에서 주로 볼 수 있다. 태평양 전쟁 승리 후 1880년대는 페루, 볼리비아에서 합병한 북부 칠레에서 질산염이 생산되고 나라가 번영하면서 산티아고도 발전했다. 1930년대에는 산티아고의 근대화가 시작, 칠레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 인구도 증가했다. 1985년 지진으로 역사적인 건물들이 파괴되었지만 산티아고는 성장을 계속해 도시 지역은 1960년에 6,500헥타르에 달했고, 이 성장은 주거 안정과 중간 및 하위 계층 그리고 주변 농촌 지역의 도시화에 반영되었다.

주요 명소로는 칠레대학교(1738)와 칠레가톨릭대학교(1888), 주립공업대학교(1947), 중앙역 및 마포초역, 중앙 시장, 국립 도서관, 조형 예술 박물관,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는 국립역사박물관, 국립순수미술관, 국립자연사박물관, 아르테킨 박물관, 과학기술박물관, 철도박물관 등이 있다. 그 밖에 세리요스에 항공박물관, 프로비덴시아에 타하마르 박물관이 있는데 공공 도서관인 국립도서관은 1813년 지어졌다. 동물원과 야영지가 있는 산타루시아 산과 산크리스토발 산의 공원은 휴양지로 유명하다. 파레요네스의 스키장과 알가로보와 산토도밍고 사이의 해안 휴양지도 볼만하다.

산티아고는 칠레 산업 및 금융의 중심이다. 칠레 총생산의 약 45%가 이곳에서 나오는데 근래 칠레의 안정적인 성장 덕에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이곳에 지사를 설치하였다. 주 생산품은 농업, 식료품, 섬유, 신발, 의복, 종이, 가구 등으로 제조업이 발달했고, 은제품, 흑옥제품, 목각 등의 공예업, 양조 및 증류업, 야금업과 구리채굴업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주식거래소 한 군데와 보험회사, 수백 개의 지점을 갖춘 주요은행들이 있어 금융부문도 활발하다.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10~3월)은 상대적으로 따뜻하고 건조하며 최고 35도까지 올라간다. 겨울(6~8월)은 습도가 높고, 평상시에 최고 기온은 15도 정도이나, 낮은 날은 0도 가까이 내려간다. 연간 강수량은 약 360mm로 강수는 겨울에 집중되며 산티아고 시내에 눈이 내리기도 한다. 주변 산에는 풍부한 적설량으로 남반구 최대의 스키 리조트가 있다. 분지라 스모그와 대기 오염이 심하기 때문에 정부는 대기 오염을 줄이기 위해 중공업 공장을 분지에서 나가도록 유도했으나 실패했다.

산티아고의 관문인 코모도로 아르투로 메리노 베니테스 국제공항은 남미에서는 첨단의 공항이고 군용 비행장 옐보스케, 소규모의 로카스티요와 토발라바 민간 공항도 있다. 칠레의 철도 중심지인 산티아고 중앙역에서 칠레 중부 탈카 등으로 국철이 연결된다. 대도시권에는 근교 전철이 산 페르난도로 연결되며 프랑스의 협력으로 건설된 4개 노선의 지하철이 있다. 서쪽 산안토니오의 여러 항구와 북서쪽에 있는 발파라이소에 연결되는 고속도로와 철도 경유지로서 대서양으로 나가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택시는 보통 검은 색에 노란 지붕을 하고 있다. 코레쿠티보(Colectivos)라는 합승 택시는 고정 가격으로 지정 노선을 운행한다.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Santiago)’는 어디에서 유래된 말일까?

‘Santiago’는 스페인어로 '사도 야고보'를 뜻하는 이름인 ‘Saint James/ St. Jacob’에서 왔다. 813년 이 도시의 파드론에서 발견된 무덤이 44년경에 예루살렘에서 순교한 사도 대야고보의 무덤임이 초자연적 방법으로 밝혀졌다고 하는데 스페인으로 안치되었다. 그래서 도시 이름이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St. Jacob(영어명 James)’은 그리스어가 모태인 라틴어 ‘Iacobus(Jacob)’에서 왔다. 이 말이 이탈리아어 ‘Giacobo’가 되고 다시 ‘Giacomo’로 됐다. 프랑스에서는 ‘Jacob’을 ‘Jacques’로 번역했고 동부 스페인에서는 ‘Jacobus’가 ‘Jacome’ 혹은 ‘Jaime’로, 카탈로니아에서는 ‘Jaume’로, 서 이베리아에서는 ‘Iago’가 됐다. 이 ‘Iago’에 접두사 ‘Sant’이 붙으면서 포루투갈과 갈리시아에서는 ‘Santiago’가 됐다. ‘Tiago’는 ‘Diego/ Diogo(포루투갈어)’로도 철자가 된다.

김권제 문화칼럼니스트
김권제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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