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재발견 35 - 말하는 강이 흐르는 왕들의 도시. ‘리마(Lima)']
[문화의 재발견 35 - 말하는 강이 흐르는 왕들의 도시. ‘리마(Lima)']
  • 한반도경제
  • 승인 2019.01.08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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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는 페루의 수도이자 리마 군의 군청 소재지로 태평양에 인접한 남위 12도, 서경 77도에 위치하여, 시내를 리마크 강이 동에서 서쪽으로 반으로 나누며 흐른다. 북쪽에 후랄(Huaral)군, 남쪽에 카네테(Cañete)군, 동쪽으로 칸타(Cañete)군과 후아로치리 주, 서쪽으로 태평양과 접해 있다. 리마는 인구 약 800만명으로 공화국 최대이며 남미의 세계적인 도시이다. 식민지 시대의 건물이 많이 남아 중앙 지구(세계문화유산 등록)와 해안 신도시로 양분된다.

도시의 역사를 보면 잉카 제국의 지배 전에 이미 현재 리마의 위치에 일부 인디언그룹이 거주하며 대지의 신 파체카마크를 믿는 이치마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추측한다. 3~8세기 무렵 루린 계곡의 파체카마를 중심으로 발전했는데 이 지역은 잉카 시대에는 거대한 태양 신전과 달의 관이 건설되고, 종교적 중심지 역할도 하였다. 1535년 1월 18일 잉카 제국을 정복한 스페인 프란시스코 피사로 일행은 리마크 강의 우측 연안에 쿠스코 대신 수도인 ‘왕들의 도시(La Ciudad de los Reyes)’를 건설했다. 계획 당시는 안데스 산맥 중턱의 하우하가 후보였지만, 고도와 해상 교통의 불편 등으로 태평양 인접 리마가 선정됐다. 1542년에 리마는 페루 부왕령의 수도로 지정된 후 아메리카의 스페인 식민지배의 중심지가 되었다. 16~17세기에 리마는 ​​알토 페루의 포토 시 은광의 은을 유럽에 수출하는 중계지로 번창했다. 1614년 인구가 25,000명이 되고 도시 문화가 번성하여 산 프란시스코 교회 및 토레태그레 저택 등 화려한 건축물이 지어졌다. 1687년과 1746년의 큰 지진으로 많은 건물이 파괴되었지만 1761년 부임한 부왕 아마토는 대규모 도시 계획과 연극을 장려하여 지식인 문화를 번성하게 했다. 리마는 아프리카 노예와, 도시에 유입된 원주민들과 메스티소 등이 어울리며 상류 백인 문화와는 별도로 독자적 크리올 문화가 형성되었다.

1808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형을 스페인 왕 호세 1세로 즉위시키자 크리올로의 민중봉기로 스페인 독립 전쟁이 일어났고 1821년 아르헨티나 호세 데 산 마르틴이 리마를 해방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이후 리마는 스페인 왕당파군에 탈환되었지만, 결국 시몬 볼리바르와 안토니오 호세 데 수크레가 아야쿠쵸 전투에서 왕당파와 군대를 괴멸시켜 페루가 독립했다. 하지만 각지에서 카우딜로가 발호했고 정치는 불안정했지만, 라몬 카스티야가 평정하며 페루는 근대화를 실현했다. 가스등과 철도가 건설되고, 1872년에는 도시 계획을 위해 리마의 성벽이 파괴되었다. 19세기 중반부터 유럽, 중국과 일본의 이민자가 들어왔다. 1879년 태평양 전쟁 발발 후 1881년 칠레군이 리마를 점령했는데 지배는 2년간 이어졌고 안콘 조약 체결된 후 철수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페루 각지의 사람들이 모이며 도시로 급속히 발전했는데 인구는 1940년 35만명에서 1980년에는 11배나 증가했다. 1968년 벨라스코 장군이 쿠테타로 정권을 잡고 페루 혁명을 시작하며 리마 주변의 빈민가는 ‘젊은 도시(푸에블로 호 벤)’라는 빈민가의 자치 운동이 추진되었다.

관광명소로는 대통령궁, 대성당, 시청사와 시 주요 공공 시설이 있는 구시가지의 마요르 광장(구 아르마스 광장), 피사로가 직접 초석을 놓고 그의 무덤이 있는 페루에서 가장 오래된 대성당, 페루의 대성자 산타 로사와 프라이 마르틴이 모셔진 산토 도밍고 교회, 17세기 전반에 스페인에서 직접 수입한 아름다운 세비리안 타일로 유명한 산 프란시스코 교회 수도원, 페루군의 수호신 성녀 세드가 모셔진 메르세드 교회, 페루 독립 운동 영웅 산 마르틴 장군이 토레태그레 공작을 위해 세우게 한 토레태그레 궁전은 아름다운 목조 발코니로 유명하며, 라 인키시시온 궁전, 라 유니온 거리, 페루 독립 운동의 영웅 산 마르틴의 동상이 있는 산 마르틴 광장 등이 있다. 1551년 남미의 가장 오래된 산 마르코스 대학이 유명하다.

리마는 저위도 해안 북쪽의 페루 해류 영향으로 기온이 낮아 가장 따뜻한 2월은 22.5℃, 가장 추운 8월은 15℃이다. 흐린 날이 많고 해안 사막 지대라 연평균 강수량은 30mm 정도이다. 평균 기온은 18℃, 평균 습도는 87.1%이고, 겨울에는 매일 바다 안개가 끼며, 습도는 항상 100% 정도이다.

교통상황을 보면 1851년에 개통된 카야오행 철도는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호르헤 차베스 역에서 비야 엘 살바도르 역까지 여섯 역 구간을 운행 중인 트렌 우루바노 1번선이 있고 노면 전철과 지하철은 없다. 호르헤 차베스 국제공항에 도로망은 고속도로(Vias Expresas), 간선 도로(Vias Arteriales), 수집 도로(Vias Colectoras), 지방 도로(Vias locales) 등 4가지기 있다. 택시는 자가용을 그대로 이용하며 앞 유리의 ‘TAXI’ 표시로 구분한다. 미터기가 없어서 택시를 타기 전에 협상해야 된다. 버스는 대형(Omnibus, Microbus)과 중형(Combi)이 운행된다.

말하는 강이 흐르는 왕들의 도시 ‘리마(Lima)’는 어디에서 유래되었을까?

‘Lima’는 시내를 흐르는 리마크 강(río Rimac)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 이름은 "La Ciudad de los Reyes"(왕의 도시)였다. 이전 스페인 식민지시절에는 리마 지역은 그 지역 원주민 이름인 ‘Itchyma’로 불렸다. 그렇지만 15세기 잉카 점유기 전에 그 지역 Rimac 강 계곡의 유명한 신탁은 이방인에게 ‘Limaq(talker)’로 알려졌다. 이 신탁은 스페인인들에게 점차 파괴되고 성당으로 대체되었지만 토속 이름은 살아 남았고 연대기에서는 ‘Límac’이 ‘Ychma’를 대체해서 그 지역의 일반적 이름이 됨을 보여준다. 현대 학자들은 토속 이름 ‘Limaq’이 스페인 발음 ‘Lima’로 됐다고 추측한다. 1535년 구세주의 공현 축일 축제일인 1월 6일을 도시 발견의 날로 정했기 때문에 ‘왕의 도시’란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이 이름은 별로 사용하지 않고 리마가 도시의 이름이 되었다. 리마를 흐르는 강 이름은 Rímac인데 원래 잉카 이름은 ‘말하는 강(Limaq)’이다.

김권제 문화칼럼니스트
김권제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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